실업고교에 다니는 여학생이다. 우리반은 45명의 학생중 10여명이 결석하고 있고, 컴퓨터 수업시간에는 인터넷도 안되는 컴퓨터로 수업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교육부는 인문계 교육대책만 내놓고 실업고에 대해서는 무신경한 것 같다. 왜 그런가. /김미라·서울 중구 신당동■ 실업고의 실상
교육부의 정책이 대입제도와 과외문제 등을 중심으로 한 인문계 고교에 집중돼 있어 고교생의 35%를 차지하는 실업계 학생들은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대부분의 실업계 고교는 학생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다. 1997년부터 시작된 무더기 미달사태가 지금은 더 악화해 학교의 존립을 위협하는 실정이다. 미달을 막기위해 학교 명칭을 정보산업고, 전자정보고로 바꾸는 등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실질적인 교육내용엔 변화가 없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재학생 관리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인천시교육청이 지난해 10월 시교육위원회에 제출한 ‘실업계고교 학생실태’자료에 따르면 이 지역 30개 실업계고 학생 4만3,139명중 23.5%인 1만152명이 1999년 들어 한번이상 결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모정보산업고는 전교생 2,032명중 1,583명이 결석을 해 학교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하고 있었다.
■ 실업고 황폐화의 원인
실업고를 졸업해도 마땅한 직장을 얻기 힘들다는 현실적 요인이 첫째다. 학생들은 취업을 해도 발전성이 없고 단순한 일만 배정받기 때문에 진학을 위해 학교 대신 입시학원에 가는 경우도 많다. 실업고 졸업생의 취업률은 1996년 82%에서 1999년 57%로 크게 낮아진 반면 진학률은 13%에서 35%로 부쩍 높아진 데서도 실업고 학생들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함께 실업고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지원부족이 상황을 더 나쁘게 하고 있다. 서울 Y여상 이준희교사는 “낙후된 교육기자재가 많아 실습 수업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또 K기계공고 박모교사는 “지난해부터 기자재 수리비가 완전히 끊겨 고장난 기자재를 폐품처럼 방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예산지원 실태를 살펴보면 이런 불만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997년 203억원이던 실업고에 대한 예산지원은 1999년에는 19억원으로 줄었고, 1997년 4억원이던 기자재 수리비는 1999년에는 아예 한푼도 책정되지 않았다.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실질적 직업교육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예상되는 문제점 실업고의 무기력화는 학생들의 탈선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D기계공고를 졸업한 정모군은 “적지않은 실업고 학생들은 적성보다는 성적에 의해 학교를 선택한 데다 학교에서 사회진출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쁜 길로 샌다”고 말했다.
산업인력의 수급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벤처 육성에 가려져 제조업이나 기초산업에 대한 관심이 가뜩이나 시들해져가는 마당에 실업고 붕괴는 자칫 산업현장의 공동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 교육부 대책과 한계
교육부는 통합형 고교를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을 함께 하는 통합형 학교에서 1학년까지는 공통과정을 가르치고 2학년때 학생들에게 인문계냐, 실업계냐를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안은 학생들에게 진로선택을 좀더 신중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장점도 있지만 악화일로에 있는 실업고의 교육여건 개선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양대 교육학과 정진곤(鄭鎭坤)교수는 “사회적 효용가치를 상실한 자격증 교육을 없애고 MSCE(마이크로소프트 공인 자격증)나 정보검색사 등 실질적인 자격증 교육을 하고 미용·제빵·디자인 등의 직업교육을 학교에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실업고에 대한 재정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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