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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믿어라"하지 말고 믿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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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믿어라"하지 말고 믿게 하라

입력
2000.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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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정부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경제정책의 경우 특히 그렇다. 일관성없는 경제정책은 시장이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뢰받지 못하는 경제정책은 원래 의도와 달리 많은 해악을 끼친다. 최근 있었던 투신사 공적자금 투입과 현대사태가 좋은 예다. 정책 당국자의 빈번한 말바꾸기로 주식시장은 연일 요동쳤고 이 와중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았다.일관성없는 정책때문에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어디에 대고 하소연할 수도 없다. 분개하며 주식시장을 떠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같은 일이 계속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자명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건전한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을 떠나고 오로지 투기꾼들만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식시장은 건전한 자본시장이 아닌 투전장으로 바뀌게 될 뿐이다.

현대경제정책 이론에서는 신뢰성문제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다룬다. 한번의 정책행위가 성공인가 아닌가는 부차적인 문제다. 한두번의 실수는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사라지면 그 어떤 정책도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많은 해악을 끼친다. 이같은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 주체인 인간은 로봇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어떤 정책이 시행되면 그 정책에 대한 기대를 형성하고 그에 따라 자신에게 이로운 행동을 취한다.

우리 관료들이 늘상 말해 온 ‘당신들은 현실을 잘 몰라’라는 말은 가소롭기까지 하다. 직접적인 이해가 걸려 있는 이해당사자와 그렇지 않은 관료중에서 누가 상황을 더 정확하게 판단할까. 관료가 시장 참여자보다 나으리라는 생각은 위험천만의 발상이다.

그러면 정책의 결과를 좌우하는 정책의 신뢰성은 어떻게 얻어질까. 먼저 시행될 정책을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가 있어야 한다. 정책의 근거가 되는 법이 없거나 정책이 작동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의 시행이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정책을 실행할 수 있게 하는 정책수단과 예산이 확보돼야만 한다. 정

책수단과 예산이 없는 정책이란 그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채 발표되는 정책이 허다하다. 공교육기반확충 금융구조조정 등 이루 헤아리기가 어렵다. 이같은 정책을 누가 믿을까.

끝으로 정책당국의 평판이다. 정책을 발표하고 시행하는 정책당국이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지, 또 그럴 의지가 과연 있는지를 시장은 예의주시한다. 아무리 법 제도가 완비되고 정책수단이 확보됐다해도 정책당국의 능력과 의지가 의심스러우면 별 소용이 없다. 정책시행의 일관성과 정책과정의 투명성이 결여되면 시장은 즉각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말바꾸기나 시간끌기는 정책당국의 신뢰성에 치명적이다.

총선 뒤로 미뤄진 제2차 금융구조조정이 곧 시행될 것이라 한다. 이같은 구조조정은 금융기관과 국민 모두가 뼈를 깎는 각고속에서 진행될 것이다. 천문학적인 돈이 또 다시 투입될 것임은 물론이다. 정책당국은 이 많은 돈이 온 국민이 한푼두푼 아낀 혈세임을 알아야 한다. 당연히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효과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다. 말바꾸기, 땜질처방으로 점철해온 정책당국은 지금이라도 환골탈태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부실규모를 정확히 밝혀내고 정정당당하게 공적자금을 조성하여 효과적으로 금융구조조정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이 되고자 하는가.

/오성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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