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4·사진)에 대한 단죄의 길이 다시 열렸다.칠레 산티아고 항소법원은 5일 종신 상원의원인 피노체트의 면책특권 박탈여부를 심의한 결과, 22명의 법관중 13명이 찬성(반대 9명), 면책특권 박탈결정을 내렸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영국법원의 ‘재판과정에서의 정신적·육체적 부적합’판결로 3월 칠레로 돌아온 피노체트는 17년간(1973-1990년)의 독재시절 각종 인권유린 혐의로 제기된 110건의 소송사건을 놓고 또 한번 고국에서 지리한 법정싸움을 벌이게 됐다.
법원의 이날 심의는 군정희생자 유족들이 피노체트의 면책특권을 박탈할 것을 요구하며 제기한 재정신청과 면책특권에 대한 심판을 내려달라는 정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뤄졌다. 이에앞서 연방법원의 후안 구스만 판사는 피노체트 귀국 직후 이들 유족들이 제소한 ‘정치범 19명 납치 및 실종’사건에서 피노체트의 개입혐의가 짙다고 판단, 그를 전격 기소한 바 있다. 이 사건은 피노체트의 유혈 군사쿠데타 직후인 1973년 특수부대 요원들로 구성된 ‘죽음의 특공대’가 저지른 범죄행위로, 군정의 대표적 인권유린 사례로 알려져 있다. 당시 세르히오 아레야노 장군을 대장으로 한 특공대가 군사재판을 통해 총살형에 처한 72명의 양심수중 19명의 행방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날 면책특권 박탈 판결에도 불구, 피노체트의 기소에서 처벌까지는 여전히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 파블로 로드리게스 변호인이 판결 직후 ‘정신적 부적합’ 논리를 내세워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피노체트가 ‘정신적으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적절한 상태’인가가 앞으로 법정공방의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국내법은 70세 이상의 피의자는 의무적으로 신체 의료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재판관할이 군사법정이냐 민간법정이냐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미 국무부는 면책특권 박탈결정에 대해 “인권문제를 심리하는 칠레 사법당국의 독립성을 높이 평가한다”는 성명을 발표, 이례적으로 피노체트에 대한 법집행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윌리엄 슐츠 국제사면위원회 미 지부 사무총장은 이번 판결을 “혁신적인 결정”이라며 “인권범죄를 저지르는 모든 독재자들에 매우 중요한 신호”라고 말했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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