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양성애… 우리시대의 성적 혼돈“영원할 거라며 믿고 마음 준 선배가 어느 날 결혼한다고 이별을 선포했을 때, 그 선배를 지우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느라 엉망으로 나를 내버려 두기도 했어요.” 상진을 사랑하는 청년이 그의 연적에게 하는 말이다.
그는 남자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다.
그의 연적은 그러나 여자. 광고기획사의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 정숙이다.
그녀는 양성애자. 극단 실험극장이 창단 40주년을 맞아 공연중인 ‘무화과꽃’은 혼돈에 빠진 우리 시대 성(性)을 그린 연극이다.
교도소를 그린 ‘뺑끼통’ 등 일탈적 성 행태로서 동성애를 소재로 한 연극은 종종 있었다.
이 연극도 그처럼 동성애를 호기심 차원에서 그린 연극이라고 지레짐작하고 갔다가는 낭패를 볼지도 모른다.
동성애는 물론 양성애까지 인텔리의 어법으로 그린, 복잡한 심리극이기 때문이다.
극은 양성애자의 등장으로 더 복잡하다. 레즈비언이면서 35세의 남자 상진과도 사랑을 나누던 정숙.
그러나 이제 나를 오빠로 생각해 달라며 삐뚤어진 관계의 청산을 요구하는 상진 앞에 그녀는 떠날 수밖에 없다.
성을 다룬 연극이니 만큼, 선정적 장면이 동반된다. 매체를 통해서, 또는 실연으로. 무대 좌측 벽면에 한 쌍의 무용수가 전라로 춤추는 모습이 투영된다.
정숙이 “선배와 한 몸이 되고 싶다”며 고독에 몸부림치는 장면에서는 상반신 나체다.
극단측은 원래 별도의 포스터용 그림까지 준비했었다. 나체의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다. 여자는 두 손으로 남자의 히프를 감싸 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러나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공연 장면을 담은 평범한 사진으로 바꾸었다.
제목은 극중 나오는 시의 제목이다. ‘무화과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네…’. 호모가 지었다는 이 시는 불모(不毛)와 동의어가 돼 가는 우리 시대 성의 모습을 절묘하게 노래한다. 25일까지 인간소극장.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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