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GE·日소니 형태 느슨한 기업연방化“과거 그룹체제는 각 계열사간 협조라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각 기업이 독자적인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53년동안 건설 자동차 중공업 전자 등 소위 ‘문어발 그룹체제’를 스스로 가꿔온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그가 최근 경영일선을 퇴진하면서 던진 이 발표문은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이 근원부터 변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정명예회장 외에도 최근 재벌 오너(총수)들의 사고 전환을 시사하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SK그룹의 오너인 최태원 SK㈜회장은 최근 한국과학기술원에서 “10-15년 후면 재벌체제는 사라질 것”이라며 “나는 오로지 SK㈜ 경쟁력 강화에만 몰두할 뿐 그룹 회장에 취임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코오롱그룹의 2세 경영자인 이웅렬 코오롱 회장은 올 3월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고등학생인 아들에게는 다른 길을 권유하고 있고, 코오롱그룹은 전문경영인이 이끌게 될것”이라고 선언했다.
재벌들의 사고전환은 기업 경영 환경 변화에 따른 것이다.‘5+3정책’으로 대변되는 정부의 강도높은 재벌개혁정책에다 더 이상 특혜를 용납지 않는 냉혹한 시장의 칼날이 재벌들을 옥죄고 있다.
또 대기업의 지분을 상속할 경우(30억원 이상) 가액의 50%까지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세대가 바뀔수록 오너 일가의 지배력은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재벌기업들은 어떻게 바뀔까.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GE나 다국적기업 ABB, 일본의 소니, 미쓰이, 마쓰시타 등과 같이 느슨한 형태의 ‘기업 연방체제’로 변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GE의 경우 발전설비, 항공, 의료, 금융, 방송 등 전혀 상이한 11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또 일본 미쓰이물산은 894개, NEC(일본전기)는 262개의 계열사를 각각 두고 있다.
소니는 자회사를 포함, 1,174개의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문어발체제는 우리나라 재벌과 같지만 이들은 각 기업별 이사회가 모든 사업에 대한 실질적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것이 다르다.
한국 재벌들은 신규사업에 뛰어들 때 미래의 사업성보다는 총수 개인의 취미나 관심사가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각 기업 이사회도 ‘오너가 결정했다면’ 철강, 자동차, 유화 등 수조원이 투자되는 사업에 별다른 반대의견 없이 자사에 할당된 투자금액을 의결했었다. 앞으로 이같은 관행이 바뀐다는 얘기다.
그러나 재계에 수십년 쌓인 ‘절대군주체제’관행 때문에 오너가 퇴진하더라도 그 막강한 영향력이 얼마나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또 아직은 사외이사들이 효율적으로 오너를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의 권리보장도 미미한 수준이다. 문어발경영을 차단하기 위한 ‘지주회사제’도 표류하고 있다. 재벌 개혁은 완성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박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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