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창준(朱昌駿·76)주중 북한대사의 누나 가족이 서울에 살고있는 사실이 확인됐다.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살고있는 한부찬(韓溥瓚·71·사업)씨는 주대사의 누나 이남(二男·1978년 작고)씨의 아들. 주대사와 한씨는 함남 흥남시 죽전리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
한씨 가족은 1주일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 이후 머지않아 주대사와 상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회담이 잘돼 이후 이산가족 교류가 활성화할 경우 주대사 가족의 만남은 상징적 사례로 남북 양측 당국에 의해 적극 추진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이미 지난해 6월 통일원에 접촉승인을 받아놓은 한씨는 지금까지 주대사에게 두 차례 서신을 보내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
한씨는 지난 연말 ‘朱昌駿 삼촌貴下’라고 쓴 편지에서 “벽돌공장 뒷집(주대사 집)에 자주 가서 자고 보고 했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라며 “아주머님(주대사 부인)으로부터 사랑을 참 많이 받았던 일이 너무나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한씨는 또 “어머님(주대사의 누나)께서는 작고하셨습니다. 삼촌에 대한 말씀을 항상 하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꼭 한번 만나서 말씀을 전하라고 당부햐셨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어머니가 7·4공동성명때 삼촌이 TV에 나오신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다”면서 “꼭 한번 만나고 싶고 고향 죽전리 아버지 부친 산소도 찾아보고 싶습니다.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한씨는 주대사와 어린시절에는 아주 가깝게 지내다 20대 전후 젊었을 때는 서로간의 이념차이로 약간 소원해 진 뒤 1951년 1·4후퇴때 어머니와 함께 월남하면서 헤어졌다.
한편 주대사측은 “신분상 남한의 가족을 만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며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해 왔으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상봉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중국에서 대학을, 소련에서 고급당학교를 졸업한 주대사는 1988년 중국에 부임, 현재 주중 최장수 외교관으로 외교단 단장을 맡고 있으며 슬하에 2남1녀를 두고있다.
송대수 특파원 dssong@hk.hk.co.kr
■ 조카 한보찬씨 일문일답
한보찬씨는 5일 기자와 만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로 외삼촌 주창준대사와의 상면을 간절히 히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_ 그동안 주대사와의 관계를 밝히지 않은 이유라도 있나.
“남한에 가까운 친척이 있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_ 주대사와의 특별한 추억은.
“외삼촌은 나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내가 7살때 외삼촌이 당시에는 정말 귀한 껌을 주기도 했고,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이야기하다 잠들기도 했다. 46년 월남했다 다시 집에 와 숨어있을 때 외삼촌이 찾아와 ‘보찬이 있나’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외삼촌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_ 어머니께서 주대사를 무척이나 그리워 하셨다는데.
“어머니는 4남매 중 장녀이고 주대사는 막내여서 외삼촌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7·4남북공동성명 때는 북한 대표로 온 외삼촌이 서울에 묵었다 가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라도 보기위해 길에 직접 나가기도 하셨다. 어머니의 유언도 ‘네가 꼭 막내 외삼촌을 만나 안부를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_ 왜 헤어지게 되었나.
“나는 해방 뒤 우익청년지하단체에 가입했고, 자유를 찾아 월남했다. 한국전쟁 때는 특수부대원으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외삼촌은 좌익 사상범으로 흥남형무소에 1년간 옥살이도 했을 만큼 공산주의에 충실했다. 당시에는 좌와 우가 한 땅에서 살 수 없었다.”
_ 주대사를 만나면 무슨말을 먼저 하고 싶나.
“외삼촌과 나는 평생을 서로 다른 이념을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혈육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