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국땅을 밟은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 나처럼 전쟁으로 고통받은 베트남 사람들을 위해 이 돈이 귀하게 사용된다며 더 바랄 게 없어.”중국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생활했던 문명금(文明今·83) 할머니가 5일 정부와 민간단체로부터 받은 보상금 전액을 “베트남전쟁 피해자를 위해 써달라”며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실위원회’(상임대표 이해동·李海東)에 기증해 주위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날 오전 ‘나눔의 집’ 원장 혜진(慧眞) 스님의 부축을 받아 서울 종로구 명륜동 국제민주연대 사무실을 찾은 문 할머니는 기금 전달식을 갖고 지난달 17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생활지원금과 ‘한국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 등 민간단체 지원금 등 4,300만원을 진실위원회에 전달했다.
문 할머니가 성금 전액을 기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베트남전쟁이 우리 민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베어 있는 ‘또다른 전쟁’이라는 생각 때문.
“‘나눔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베트남전쟁 얘기를 들었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어. 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누구나 같은 거야.”
이국 땅에서 겪은 고통의 시간들이 다시 생각나는지 문 할머니는 눈가에 맺힌 이슬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진실위원회 상임대표인 동국대 강정구(姜禎求·사회학) 교수는 “우리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양민학살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건립할 역사박물관에 할머니의 고귀한 뜻이 고스란히 담기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할머니는 지난 1935년 봄 18세 꽃다운 나이에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순우(孫吳)의 731부대 근처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하며 해방때까지 하루에 20∼30명이나 되는 일본군인을 상대해야 했던 아픔을 간직한 채 64년을 이국땅에서 외롭고 힘들게 살아오다 지난해 9월 영구귀국해 현재 경기 광주군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할머니 10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양정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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