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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도자 김정일](7) 문학예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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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도자 김정일](7) 문학예술관

입력
2000.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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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들어 '주체문학' 재강조김정일은 1964년 당 중앙위원회에서 문학예술 분야를 직접 관장할 정도로 이 분야에 각별한 관심과 전문가적 소양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렵부터 최근까지 쓴 문학예술과 관련된 글을 보면 그의 문학예술관은 크게 두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수령형상 창조를 통한 주체문학의 유지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의 도식성과 편협한 유산관에 대한 비판을 통한 문학의 확충이다.

이 둘은 때로 일정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지속되는데 시기에 따라 어느 한쪽이 득세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내외적 상황이 어려울 때는 전자를, 전반적으로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때에는 후자를 강조한다.

주체문학이 전일화한 1967년부터 70년대말까지는 주로 전자의 경향이 지배했다. 문학예술에서의 수령형상 창조를 주도하는 곳이 바로 4·15문학창작단이다.

67년부터 김정일이 직접 조직해 주도하고 있다. 김정일의 문학예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수령형상 창조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주체문학 예술이다. 이는 김정일의 영향력이 미치는 한 북한의 문학예술이 벗어날 수 없는 기본 틀이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김정일의 문학예술관은 그 무게 중심이 바뀌었다. 김정일이 수령형상 문학과 주체문학 예술이 일정 기반 위에 올라섰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주체문학 예술의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인 북한 문학예술의 도식성과 편협한 유산관을 비판하면서 문학영역의 다양화와 질적 수준의 제고를 꾀했다.

67년 이후 북한문학이 주체문학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인민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작품들이 줄어들었고 또한 과거의 작가와 작품이 대거 제외되는 바람에 문학유산 전체가 매우 빈약해졌다는 판단에서였다.

김정일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학의 철학성과 높은 지성을 요구하는 한편 문학유산의 확충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도했다.

‘도식성은 문학의 죽음'이란 구호 아래 다양한 형식과 기법의 문학작품들이 실험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67년 이후 북한의 주체문학 예술에서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노력들이 선보였다.

또한 문학 유산의 영역에서도 과거에 정치적으로 문제가 됐던 작가들이 이 시기에 복권됐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이광수다. 이광수는 김일성이 문학예술을 지도할 무렵인 5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 북한에서는 이광수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를 바꾸었다. 김정일은 이광수가 친일행각을 한 20년대 이전까지의 작품에 대해서는 출판을 허락했다. 이는 북한 문학예술계에서 과거에 정치적으로 문제됐던 작가와 작품에 대한 대대적 복권의 신호탄이 됐다.

수령형상 창조에 바탕을 두면서 도식성과 편협한 유산관에 대한 비판을 겸했던 80년대의 북한문학은 김정일 문학예술관의 두 입장이 비교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서 비롯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면서 이러한 지향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주체문학 예술의 경향이 한층 강화되었다. 사회주의의 전반적 붕괴로 인해 북한사회가 위기를 강하게 느끼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작가와 예술가들을 당의 동행자라고 규정하는 서한을 보내면서 작가들이 수령형상 창조에 한층 힘써줄 것을 요구했다. 이는 철학성과 지성을 강조하던 80년의 서한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이 시기에는 수령형상이 빠진 작품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전의 북한문학과는 현저한 차이가 난다.

그 결과 북한 작가들은 이전에 행했던 도식성의 틀을 벗어나려던 다양한 실험과 노력을 계속할 수 없게 됐다. 단지 문학유산의 확충 작업은 90년대에도 계속 됐다.

문학유산 중에서 항일혁명 문학예술은 ‘전통’이라고 규정한 뒤 이를 일반적인 문학예술의 유산과 구분했다. 김정일은 이 둘을 섞는 것은 수정주의이고 반동적인 것이라고 못박았다.

김정일은 당분간 수령형상 창조에 무게중심을 두고 이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도식성의 극복과 유산의 계승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재용(원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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