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나라’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가 천황 중심의 국가 운영을 뜻하는 ‘국체(國體)’발언으로 또 물의를 빚고 있다.모리 총리는 3일 밤 나라(奈良)시에서 행한 연설에서 민주당 비난에 나서 “공산당은 천황제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떻게 그런 정당과 함께 어떻게 일본의 ‘국체’를 지킬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국체’는 일반적으로 주권의 소재에 따른 국가 형태를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2차 대전이 끝날때까지 ‘천황을 윤리적·정신적·정치적 중심으로 하는 국가의 존재 방식’이라는 특수한 의미로 사용됐다. 문부성은 1937년 공식 견해를 담은 ‘국체의 참뜻’에서 ‘천황에의 절대 순종’을 강조하면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배격한 바 있다. 또 2차 대전후 현행 헌법 제정 과정에서 빚어진 ‘국체 호지(護持)’논쟁도 천황제의 존속 여부를 다툰 것이었다.
이런 특별한 함의 때문에 역대 일본 정치인들은 ‘국체’라는 말을 삼가해 왔다. 따라서 모리 총리가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데 대해 일본 언론과 야당은 ‘신의 나라’ 발언 이상의 반발·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또 자민당내에서도 25일 총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모리 총리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국체’는 ‘국가 체제’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해명만으로는 ‘천황 중심의 신의 나라’ 발언과 마찬가지로 뇌리속에 복고 의식을 드러냈다는 야당과 언론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신의 나라’‘교육 칙어(勅語)’‘국체’등 그의 잇따른 발언이 한결같이 일제의 황국사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의식 구조를 중심으로 한 자질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을 전망이다.
그의 ‘국체’ 발언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東京)도지사의 ‘제3국인’ 발언과 닮았다. 패전 직후 미군정하에서 재일동포와 중국인 등을 차별해 불렀던 이 말에 대해 그는 ‘외국인’이란 뜻이라고 해명했지만 결국 사과해야 했다. 다만 ‘불법 입국한’이란 수식어를 앞에 붙였고 외국인 범죄를 예로 들었다는 점에서 대중의 반발은 피할 수 있었다.
◇문제 발언
“어느 정당이 어느 정당과 손을 잡는 것이 가장 안심할 수 있고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을까를 판단해야 한다.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 서기국장이 3일 ‘야당이 연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에게 공산당과 손을 잡을 것이냐고 묻고 싶다.
민주당은 여러 사람이 모여 들어 과거 사회당·민주당 사람도 있고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처럼 헌법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민주당은 공산당과 협력한 일도 있다. 그러나 공산당은 강령을 개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천황제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자위대도 해산하려 할 것이고, 미일 안보체제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정당과 함께 어떻게 일본의 국체를 지킬 수 있겠는가. 민주당은 곤혹스러울 것이다. 민주당은 도저히 과반수를 얻을 수 없다. 공산당과 제휴하는 정당이 책임을 지고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도쿄
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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