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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세상] 승리를 예감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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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세상] 승리를 예감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입력
2000.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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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승리를 예감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마라톤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이제 이겼다’는 생각을 가질 때라고 한다. 아무리 결승점이 바로 눈 앞에 있어도 언제 경쟁자가 뒤에서 튀어나와 따라잡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라토너들은 테이프를 가슴으로 가르기 전까지는 레이스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한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일까. ‘이제 이겼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정신과 육체의 긴장이 풀어지기 때문이다. 갑자기 힘이 빠지고 속력을 낼 수 없다. 어서 빨리 쉬고 싶은 생각만 절실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 몇백 m를 남겨두고 추월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앞서 가던 선수가 한 순간 ‘이제 이겼다’고 생각함으로써 정신력과 근력을 모두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앞지르는 선수를 다시 추격하려 해도 이미 정신과 근육은 말을 듣지 않는다. 어디 마라톤뿐이겠는가. 모든 스포츠에 적용될 것이다.

지난 29일 막을 내린 미 LPGA 코닝클래식 최종 라운드에서 전년도 챔피언 켈리 퀴니와 비키 고에체 애커만, 명예의 전당 멤버인 노장 베시 킹 등 3명이 연장전에 들어가 2번째홀을 맞았다. 퀴니와 애커만의 티샷은 페어웨이 한 가운데에 안착했고 킹의 티샷은 왼쪽 러프로 들어가 투온이 불가능해 보였다.

갤러리들은 킹이 우승경쟁에서 탈락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실황중계하던 골프채널의 평론가도 퀴니와 애커만 중에 우승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애커만의 세컨드 샷은 핀 3m 전방에, 퀴니의 볼은 핀을 지나 5m 지점에 멈췄다. 애커만의 승리가 예견되는 순간이었다.

베시 킹은 전방에 높은 나무가 가로막고 있어서 볼을 넘기기도 힘들 것으로 보였는데 노련한 킹의 힘찬 아이언을 떠난 볼은 높은 나무를 넘어 그린에 떨어져 애커만의 볼에 살짝 부딪힌 뒤 핀 2m 거리에 멈췄다. 퀴니는 투 펏, 애커만의 퍼팅은 들어가는 듯 했으나 홀을 스쳐 비켜 갔고 마지막 킹의 퍼팅은 홀인됐다.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하루 해가 저물었으되 오히려 노을이 더욱 아름답고, 한 해가 장차 저물려 하되 귤은 더욱 새로운 향기를 풍긴다. 그러므로 군자는 인생의 끝인 만년에 새로이 정신을 백배 더해야 마땅하리라.’명나라때 홍자성(洪自誠)이 지은 ‘채근담(菜根譚)’의 이 구절은 18홀을 맞는 골퍼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방민준 편집국 부국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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