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군 매향리에 또다시 ‘전쟁’이 시작됐다.지난달 8일 미 공군기 폭격사건이후 훈련이 일시 중단된 지 19일 만인 2일 정오. 굉음과 함께 나타난 A-10공격기가 매향리 마을지붕들을 스치듯 저공비행한 뒤 곧이어 물길 건너 농섬에 폭탄들을 쏟아 놓기 시작했고, 뒤이어 날아든 F-16 전투기들은 해안 표적을 향해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폭염과 흙먼지, 고막을 찢을 듯한 폭음과 내장까지 울리는 진동…. 그동안 화나 조사에 한가닥 기대를 걸어왔던 주민 대부분은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 상황을 망연히 지켜보다 곧 고개를 떨궜다. “주민피해에 대한 결론도 나지않은 상태에서 설마 훈련을 재개하겠느냐 싶었는데….”
원망스런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던 주민 전희덕씨는 “수십년간 미군의 폭격으로 그렇게 시달렸는데, 어떻게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이처럼 다시 폭격을 할 수 있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거의 체념한 표정의 마을 주민들과 달리 마을과 해안을 가로지른 철책 앞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미 공군 폭격연습 주민피해 대책위원회’ 회원 30여명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폭격 시작과 함께 격렬한 분노를 표출했다.
참다 못한 대책위원장 전만규(44)씨가 절단기로 사격장 철책을 뜯어내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자, 아예 철조망을 뛰어넘어 ‘훈련 개시’를 알리는 붉은색 깃발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전씨가 군사시설보호법위반 혐의로 현장에서 즉각 경찰에 연행되자, 대책위 소속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 학생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항의했다. 한 주민은 “미국에도 마을 옆에 사격장이 있느냐. 사격장을 당장 폐쇄해야한다”고 악을 썼고, 또 다른 주민은 “대책위원장을 잡아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며 애꿎은 경찰에게 화풀이를 했다.
이에 앞서 이들은 전날인 1일 오후 아예 폭격을 원천 봉쇄할 요량으로 농섬 점거를 기도하다 500여명의 경찰에 의해 제지를 받았었다.
매향리에는 이미 이날 오전 8시30분께부터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전날 훈련 개시 발표가 있었지만 “그래도 당장이야…”하는 심정으로 막 아침일을 시작하려던 주민들의 얼굴은 곧 어두워졌다. 사격 시작 전이면 늘 날아오는 미군 정찰헬기가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 마을 상공을 선회한데 이어, 철책선 밖 해안에 폭격을 알리는 붉은색 깃발이 올랐던 것.
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민·관 합동조사단을 구성, 지난 50년간의 피해 재조사를 요구하는 한편, 앞으로 매향리 사격장 폐쇄운동을 전국민차원의 캠페인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결의했다.
화성=송두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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