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지점이 토요일이라고 문을 일찍 닫으면 어떻게합니까.”“공휴일에 입금할 곳이 마땅치않아 여간 불편한게 아니예요.”윌프레드 호리에 제일은행장은 지난달 29일 직접 서울 동대문시장 상인들을 만난 뒤 한결같은 불만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융통성이 전혀 발휘되지 않은 한국 시중은행들의 보수적인 영업형태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호리에 행장은 불만을 토로하는 상인들에게 즉석에서 약속을 했다. “이번주부터 즉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동대문상가 내에 있는 창신동지점은 3일부터 토요일에도 해당 업체의 사정에 맞춰 오후6시까지 수납업무를 하기로 했다.
‘호리에식 경영’이 서서히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거대한 개혁이 아니라 ‘작지만 중요한 변화’들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1월21일 ‘외국인 행장’이라는 수식어 탓에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취임했지만 그동안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한다더니 별 것 없다’는 비아냥을 받아온 것이 사실. “수십년간 지속돼온 조직의 관행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은 상당한 부작용을 동반하게 됩니다.” 호리에 행장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고 말한다.
호리에 행장의 경영철학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또 한가지 사례. 25년여 동안 제일은행과 거래를 해온 인천 신촌사료 김용태 사장은 직접 회사를 방문한 호리에 행장을 만난 직후 곧바로 H은행에 넣어뒀던 19억원의 예금을 인출해 제일은행에 입금했다.
“오랫동안 거래했는데도 금리혜택이 전혀 없다”는 불만을 이야기하자 호리에 행장이 즉석에서 해당 지점장에게 전화해 외환수수료를 0.25% 할인해주는 등 금리혜택 조치를 취했던 것. 김 사장은 “요구사항이 받아들여 질거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바로 조치를 취해준 것에 대해 무한한 신뢰가 갔다”고 말했다.
호리에 행장이 눈여겨 본 다른 한가지는 지점장 인사. 길어야 1-2년이면 지점을 옮겨다녀야 하는 국내은행 현실에서는 지점장들이 전문성이나 지역밀착성을 갖게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판단이었다.
호리에 행장은 “국내 은행들은 너무 자주 인사이동을 하기때문에 지점장들이 전문성을 살릴 수가 없다”며 “모든 지점은 그 지역의 특성에 맞도록 영업을 해야 제대로 수익을 내고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지점장 인사를 3년 이상 주기로 해 나가겠다는 것이 호리에 행장의 의지. 그는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 기존의 틀과 관습을 조금씩 뜯어 고치겠다”고 밝혔다.
제일은행의 한 직원은 “‘공격 경영’이라는 것이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오픈 마인드’로 합리적인 경영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국내은행들은 미국의 뉴브리지캐피털에 팔린후 외국은행으로 변신한 제일은행의 경영혁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일본계 미국인인 호리에 행장이 한국에서 어느정도의 바람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