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태’로 우리나라 기업계, 금융계 뿐만 아니라 국제금융 시장에서도 전례없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현대사태의 큰 줄거리는 두가지다. IMF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계속된 방만한 팽창경영과 이로인한 유동성 부족현상이 그 하나요, 정주영 명예회장일가 중심의 고질적 족벌경영이 그 둘이다. 물론 정부측의 빅딜 압력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현대는 1998년 한해동안에 기아자동차, LG전자와 같은 큰 덩어리를 흡수하고 적자가 날 수 밖에 없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강행해 멍이 들었다.
‘바이코리아’를 통한 주가조작사건 같은 것도 시장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 같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을 강행한 것으로 일반의 빈축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유동성 부족문제는 일단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것 같다. 그룹이 갖고 있는 상장및 비상장 유가증권 매각, 보유부동산 매각, 부품사업 등 기타자산처분 등을 통해 약 3조8,000억원의 단기유동성을 확보하고 그룹전체의 투자축소분 2조2,000억원을 합해 거의 6조원에 달하는 유동성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채권단이 협조해 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채권단이 그룹보유 주식의 처분각서를 받고 이를 담보로 돈을 풀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주거래 은행인 외환은행이 이상의 자구책에 대해 대체로 만족하는 것 같아 유동성 문제는 일단 소강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어제 아침 불거져나온 가족간의 불협화음이 또 어느 쪽으로 불똥을 튀길지 모르는 일이다. 정명예회장이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두 아들도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한 뒤 현대·기아 자동차측이 곧바로 성명을 내고 정몽구회장의 퇴진은 있을 수 없음을 선언하였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제2의 왕자의 난’이 시작되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유동성 문제는 채권단이 지속적으로 현대그룹의 약속이행을 점검하면서 압박을 가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대로 안심이다. 그러나 현대의 지배구조 문제는 아직도 간단치 않은 요인을 안고 있다. 정몽구회장계열의 자동차·정공·캐피탈·제철 등은 하나의 소그룹으로서 자동차를 중심으로 뭉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그 반작용으로 정몽헌회장이 거느리는 그룹 또한 복원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현대의 지배구조 문제는 국내경제의 문제만이 아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대우에 이어 현대라는 거함이 부실운영으로 침몰할 때 한국경제 전체가 또한번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지는 최근 며칠동안 연거푸 현대그룹의 경영적 변신을 권하고 있으며, 체이스씨큐어리티 같은 금융분석전문기관도 유동성 위기는 정부와 채권단의 협력으로 극복할 수 있으나 시대의 변화를 무시하듯 진행되고 있는 1인 독재 경영체제는 하루속히 청산되어야 한다고 쓰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정부와 국민 모두가 지켜보아야 할 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지배구조에 있어서 이미 보편타당성이 검증된 소유와 경영의 분리 체제로 우리의 대기업들이 변신하도록 꾸준히 독려해 주어야 한다. 이 원칙이 절대 흔들려서는 안된다. 둘째, 향후 재무구조와 지배구조에 있어서의 변신노력을 채권단이 감시하도록 해야한다. 정부가 이면에서 정치적 혹은 권위주의적 유혹에 빠져 시장을 도외시한 압력을 가하는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국민은 정씨일가의 명예로운 퇴진을 위해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 나라 경제를 신흥공업국으로 일구어 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역전의 용사다. 그 아들들도 또한 그렇다. 이들이 살아있는 전설로 존경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시장과 인격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장희·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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