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칼튼 GRO주임 유혜란“한국의 기업에 투자하러 온 외국인이 국내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기업은 호텔입니다. 그만큼 호텔 서비스는 그들의 투자마인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의 GRO(Guest Relations Official)주임 유혜란(33)씨는 철저한 서비스정신과 프로의식을 강조한다.
GRO란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직업. 휴식의 장소인 호텔이 이들의 일터이다. 호텔에 투숙하는 VIP고객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호텔의 실적에 영향이 큰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투숙기간은 물론 체크인 이전이나 체크아웃 이후에도 특별한 배려가 필수적이다.
‘한국에서 거래파트너로 삼고 싶은 회사를 알아달라’거나 ‘5년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골동품상에서 산 물건의 애프터서비스를 받고 싶다’는 등 GRO에게 요구하는 서비스는 퍽이나 다양하다. 호텔내 서비스를 넘어서 여행 쇼핑안내 등을 해결해주기 위해서는 평소의 경험이나 상식을 총동원해야 한다.
영국에서 온 한 비즈니스맨이 디스켓을 두고 왔다며 발을 동동 구를 때는 용산전자상가를 샅샅이 뒤져 고객이 원하는 것과 똑 같은 것을 구해주었다. 미국인 투숙객이 길거리에서 주인없는 개를 두 마리 주어와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
강아지를 미국에 보내기 위해 건강검진과 예방접종을 시킨 뒤 비행기좌석을 예약해 태우는 일까지 그의 몫이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손님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강아지 사진과 감사편지를 보내왔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입 속의 혀’처럼 고객의 필요를 적절하게 포착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필수적이다. 유씨는 “좋은 서비스를 위해 자신의 입장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일의 내용이 정형화해 있지 않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드러난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말한다.
고객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도 필수적이다. 손님에 따라 오리털베게를 싫어하거나 특정제품의 비누만 찾는등 기호가 까다롭다.
이 같은 취향까지 모두 기억해 배려하는 것이 GRO의 역할이다. 한 번 찾아온 손님이 자신의 서비스를 기억해 다시 호텔을 찾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그는 두번째 찾아오는 손님의 경우 사진을 직원게시판에 붙여놓아 호텔 내 모든 직원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해 부를 수 있도록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10년째 호텔근무를 해 온 그는 현재 리츠칼튼호텔에서 일하는 11명의 GRO가운데 가장 고참이다. 다른 GRO들의 매너 복장교육까지 그의 책임이다. 매니큐어나 화장은 튀지 않아야 하고, 스타킹은 커피색이나 살색, 귀걸이는 100원짜리 동전보다 크지 않아야 한다.
엄격한 복장규칙 때문에 자신을 ‘리츠칼튼의 고교생’이라고 부르는 그는 “자신의 개성을 내세우지 않고 호텔의 구성원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는 GRO주임이 되기까지 호텔 라운지에서 재털이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1990년 대학을 졸업한 뒤 하이야트호텔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비서실에서 일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부딪히는 생동감이 좋아 현장근무를 지원했다. 1년간 로비에서 훈련을 받은 뒤 식음료부에 근무했다. 1995년 리츠칼튼호텔 오픈때 직장을 옮겨 줄곧 GRO로 일해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자가 호텔에서 일하는 것’을 비딱한 눈으로 보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어떤 일을 하는가보다 그 일을 어떤 태도로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GRO 업무에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김동선기자 dongsun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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