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에 술로 인해 신세를 망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누가 언제부터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너무도 인위적으로 거두절미하여 뚝 끊어낸 이른바 ‘386세대’의 총아들이 술 때문에 하루아침에 탕아로 전락했다. 가히 민족의 위기라 여겨도 될 만한 교육위기로부터 우리를 구원의 땅으로 인도해야 할 이들도 그만 바쿠스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부패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시민운동의 그 깨끗한 목소리마저 성범죄자라는 낙인을 안고 말문을 잃었다.코끼리를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의 최근 관찰에 따르면 심각한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는 코끼리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사회에 우리처럼 술집이 있어 그런 곳을 찾는 것은 아니고 발효된 열매를 주어먹으며 술에 취하는 것이다. 많은 코끼리들이 일단 술맛을 보면 계속 발효된 열매만을 찾아다닌다.
생물학자들은 퍽 오래 전부터 우리를 술독에 빠뜨리는 장본인인 ‘알코올 중독증 유발 유전자’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문제의 유전자를 찾기만 하면 술로 인해 벌어지는 이 모든 추태의 주범을 검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우리들 중에는 특별히 남보다 술에 빨리 취하고 일단 취하면 쉽게 깨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또 무슨 까닭인지 그 짓을 계속 반복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증 유발 유전자를 찾는 작업은 그다지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코올 중독증이 병적인 문제가 된 것은 그리 오랜 옛날이 아니다. 우리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고 그 곡물을 가지고 다량의 술을 만들 줄 알게 된 후에야 심각해진 현상이다. 또한 높은 도수의 알코올 속에서도 자랄 수 있는 효모의 발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재까지 수집된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우리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기껏해야 약 1만년 전의 일이다. 1만년이라는 시간은 알코올 중독증과 같은 형질이 진화하기엔 너무도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알코올을 비롯하여 온갖 약물들은 물론 도박이나 여색 등에 쉽사리 탐닉하게 만드는 유전자가 한 두 개로 이뤄져 있을 가능성은 극히 적다.
이런 유전자들은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원하는 것을 구하려는 긍정적인 효과를 유발하는 많은 유전자들 속에 섞여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유전자들이 예전에는 없었던 술독에 빠져 제 길을 못찾고 있을 뿐이다. 야망이 크고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일수록 술이나 다른 여러 유혹에 빠질 위험이 더 클 수 있다. 그들의 뇌는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강한 보상을 받으려는 경향이 남보다 크기 때문이다.
술이 원수다. 술에 패한 그들의 모습이 초라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술이란 게 없었더라면 그런 패배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공인으로서 지켜야 할 몸가짐은 결코 아니었으나 애당초 있지도 않은 허상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우리들의 환상에도 문제가 있다.
선생님도 화장실에 가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국 알아차리지 않았는가? 475세대 없이 어찌 386세대가 있을 수 있겠는가? 386정치인들은 거의 한결같이 정치적 야망 때문에 학생운동도 했던 이들이다. 만일 아니라고 우긴다면 미리 호텔까지 잡아주고 아내인줄 알았다는 변명만큼이나 궁색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이가 많지 않았던 것처럼 지나친 질타는 삼가고 ‘술 권하는 사회’ 자체를 바로잡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과 성인 모두에게 건전하게 즐길 공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최재천 서울대 교수
생명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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