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정치인과 시민운동을 하늘높이 띄웠던 거품이 순식간에 빠지고 있다. 눈부신 비상(飛翔)을 마땅찮게 보던 눈에도 그 추락 속도는 놀랍다. 역시 끝내주는 ‘냄비 사회’다. 지구상 어디에도 이렇게 얄팍한 사회는 다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거품빼기도 오래 갈 리 없다. 세상이 시끄럽지만, 곧 냄비속에 들어올 남북 정상회담을 끓이느라 온통 들뜰 것이다. 막 끓여낸 386 정치인과 시민운동 따위는 되돌아볼 겨를조차 없을 게 틀림없다.■그들의 추락을 즐기거나, 반대로 안타깝게 여겨 변호할 생각은 없다. 모든 일을 거품 투성이로 만드는 사회, 또 어김없이 치르는 거품빼기에도 철저하지 못한 사회를 개탄할 따름이다. 이러니 끊임없는 충격적 사건들로 냄비가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이다. 누가 냄비에 들어가고 누가 불을 때든 간에, 모두가 공범이고 모두가 냄비라는 얘기다. 지난 총선 즈음에 이미 냄비근성과 거품만들기가 극치를 보였는 데도, 위선적 사회가 그걸 모른 체 했을 뿐이다.
■흔한 정치개혁 명분을 앞세워 법과 논리를 외면하고, 실질적 개혁성과 마저 의심되는 운동을 시민혁명 반열에 올린 것부터 역사가 웃을 일이다. 그게 정치개혁과 시민운동 이론에 비춰 얼마나 터무니 없고 위험한가는 옹호에 앞장선 학자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걸 걱정하면 반개혁으로 치부하는 와중에 보수언론과 학자까지 거짓·과잉찬양을 일삼았고, 386 정치인들의 위선적 면모와 선거행태에는 비판을 아꼈다. 파탄은 예비돼 있었던 것이다.
■총선결과가 진정한 정치개혁과 동떨어졌을 때도 냉정한 평가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을 대중적 스타로 만드는 데 열올렸고, 그들 또한 그렇게 행세했다. 그 허상이 우연찮게 깨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구악(舊惡)들과 보수세력의 환호나 반격 따위를 걱정할 계제가 아니다. 진보를 표방한 이들의 구악적 행태가 더 큰 문제다. 개혁전망을 한층 어둡게 하기 때문이다. 어줍잖은 변호는 거품빼기를 가로막는다. 냄비와 거품은 모두 버려야할 유산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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