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조직사업… 보수적 用人術남북 정상회담 개최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북한의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간 우리 사회가 북한의 정체와 정치지도자를 ‘반국가단체’와 그 ‘수괴’로 간주해 왔던 관행에 일대 변화가 올 것임을 의미한다.
남북관계가 극단적 적대성을 본질로 해 왔음을 감안하면 남측 정상이 북측 정상을 대화의 상대자로 인정 했다는 것은 양측이 동반자관계로 갈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서막이다.
김정일은 2,200만 북한 주민들의 최고지도자이다. 그러나 그의 통치스타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북한 내부에서 그가 행한 통치 활동은 거의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다. 해외 방문도 거의 없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는 북한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민들은 김정일을 로동신문이나 중앙방송 등 관영 언론매체를 통해서만 접한다. 물론 김정일의 육성은 들을 수 없다.
이를 통해 김정일은 신비화된 지도자의 이미지로 주민들에게 각인된다. 그는 항상 현지지도와 시찰을 통해, 군대의 열병식이나 대규모 당·정 회의의 개막식 등을 통해서만 인민들에게 모습을 보이며 그에 관한 전설적 얘기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교양된다.
정치경력을 당의 조직지도와 선전·선동 분야에서부터 쌓기 시작했으며 특히 조직사업을 지난 30여 년간 담당했다는 점은 그가 북한을 지배하는 실질적 지도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다. 당 비서국 조직지도부는 그야 말로“당 속의 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하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당 조직 분야를 담당했던 19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북한에서 대규모 숙청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른바 ‘유일지도체계 10대 원칙’이 제정되고 북한 사회의 분위기가 냉각된 이후이기 때문에 감히 김정일에게 도전할 간부들이 나타날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김정일의 간부들에 대한 정책이 보수적임을 드러내는 증거로도 받아들여진다.
김정일은 당과 국가, 군대 등 모든 권력기구들을 세분, 각 조직들이 자신만을 쳐다보며 충성경쟁을 하게 만드는 통치술을 발휘해왔다. 마치 구획화한 칸막이로 빙 둘러져 있는 방의 한 가운데에 자신만이 서 있는 모습이다. 이는 전형적인 분할통치 방식이다. 각 기구들은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해 결재를 받은 뒤에야 비로소 집행에 들어간다. 책임도 오직 김정일에 대해서만 진다.
김정일은 당업무를 통해 통치행위를 시작했기 때문에 국가나 군대보다는 당에 대해 애정을 많이 갖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국가사무를 책임진 이후에는 당 이외의 조직들도 직접 관리하게 된다.
예컨대 80년대 중반 그는 외교 업무에 대한 더욱 많은 권한을 당 국제부보다 외교부(지금의 외무성)에 부여하고 그 일을 직접 챙겼다. 1991년에 최고사령관이 된 그는 국방업무를 관리하는 최고책임자가 됨으로써 김일성이 살아 있는 동안에 이미 사실상 실질적인 최고통치자가 되었다.
이와 같이 모든 분야의 권력기구를 장악해 왔기 때문에 그에게는 당·정·군의 역할 분담만 있을 뿐 이들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하등의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경제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자리에서는 내각의 역할을 강조하고 안보나 기강을 강조할 때에는 군대를 내세우고 정치나 사상을 내세울 때에는 당을 강조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간의, 또는 이들 내부의 토론과 합의는 존재할 수 없다.
김정일 통치 아래서 가장 약화된 조직이 바로 당중앙위원회나 정치국 등 전통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체제에서 정책결정을 책임지는 최고 조직들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인 현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북한은 매우 독특한 정치체제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의 사정이다. 김정일이 자신의 나라를 어떤 방식으로 통치하든 그의 존재를 벗어나서 북한을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김정일만 설득하면 북한의 국가정책 노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의외로 쉽게 확보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류길재(柳吉在·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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