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은 정부와 채권단의 긴급 자금지원으로 현대건설의 유동성 확보 어려움 등으로 촉발된 현대사태의 급한 불을 일단 끌 수 있게 됐다. 정부는 현대사태가 일부 계열사의 임시적 유동성 문제에 국한될 뿐 그룹 전체로 확산될 위험은 없다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 대우그룹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문제는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현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태가 악화할 수도 있고, 조기 수습될 수도 있다. 현대가 진정한 개혁을 하면 시장의 믿음을 회복하겠지만, 미봉책에 그친다면 빠르게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공은 현대측에 넘어와 있는 것이다.
현대사태의 원인은 신뢰성이 급격히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근대적인 경영체제 등 지배구조 개선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 구조개혁이 미진한데서 왔다. 때문에 현대사태 해법의 핵심은 시장이 믿을 수 있는 강력한 구조조정의 시행이다. 현대는 우선 디지털 경제시대에 걸맞은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는 등 지배구조를 새롭게 개선해야 한다. 동시에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 우량 계열사를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한편 진실로 개혁의지가 있음을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 만일 현대측이 전반적인 경기회복에 따른 수익성 향상에 대한 기대나 우량 계열사에 대한 미련으로 ‘제 값 받기’등을 내세워 미적거린다면 시장의 불신을 더욱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태해결의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정몽헌회장의 돌연한 출국에 대해 정부·채권단과 현대가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놓고 갈등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투자자들의 우려가 있다.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정부는 현대에 대해 각종 좋지못한 소문들이 계속 나돌았지만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향후 주채권은행이 현대의 구조조정 과정과 재무상황 등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지속적으로 검증하겠다고 밝혔지만, 또 뒷북을 치는 것은 아닐지 투자자들은 걱정하고 있다.
대우사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대마저 가세할 경우 우리 경제가 받을 타격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정부는 현대사태 처리에 있어 원칙을 세워 투명성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고, 제2 금융권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지혜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신뢰를 얻게 하는 현대의 실질적이고 조속한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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