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속 '교육정책委' 설치를…우리의 교육제도는 대체로 미국모델을 따라 왔다. 전반적인 학제가 그렇고 대중적인 대학교육, 수능시험제도 등이 모두 그렇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국의 대학교육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상품’으로 정평이 나 있고, 반면 공립의 중·고등학교 교육은 형편없는 실패작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미국제도를 본뜬 우리의 교육현실은 어떤가. 대학은 미국대학처럼 안되고 중등교육도 미국처럼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육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극심한 대학입시 경쟁과 그에 따른 과열과외에 집중돼 있다. 무엇이든 지나치고 과열되는 것은 안 좋은 것이고 대학입시 역시 마찬가지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무엇을 놓고 그토록 과열경쟁을 벌이느냐에 있다.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의 내용은 얼마나 쓸모있는 것인가.
기본·장기정책 의결기구… 장관도 결정에 따라야
교과서 국·검정 점차줄여 質 향상
한 대학內 4년제와 2년직업교육과정 병설
국가시험 지방대생 할당 지역명문대 키워야
수능시험의 출제 방향 등 부분적인 개선노력이 있어왔지만 우리의 교육은 아직까지도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에서 어느 정도의 암기는 필요하지만 억지암기는 시험이 끝나고 나면 쉽게 날아가 버린다. 뿐만 아니라 공부에 대한 염증만 불러일으킨다.
암기 위주의 입시경쟁처럼 비생산적이고 무모한 돈과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또 어디 있겠는가. 정말 필요하고 쓸모있는 공부를 하느라 경쟁을 벌이고 돈을 쏟아붓는다면 문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입시를 위한 부실투자가 지속된다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매우 딱한 일이다.
● 무엇을 어떻게, 소프트웨어를 바꿔야
어차피 대학입시에서의 과열경쟁은 얼마간은 피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학력 위주와 서열 중심의 관념이 쉽게 변하지 않는 한, 그리고 명문대학으로 평가받는 대학 수가 갑자기 늘어날 수 없는 한, 입시경쟁과열은 어쩔 수 없다. 한 사회의 지배적 의식은 그것이 불합리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변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명문대학이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장 손을 대야 할 것은 경쟁을 벌이는 공부내용을 바꾸는 일이다. 즉 중등교육에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고 가르치며,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입시에 반영시키느냐 하는 데에 교육개혁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공부하고 가르치느냐와 관련해 몇 가지 강조할 것이 있다. 우선 교과과정을 개혁해야 한다. 필수과목을 대폭 축소하여 대학에서의 공부를 위해 필요한 수준의 교과목은 모두 선택으로 하고 또 그 수준등급을 구분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지난 고등학교시 절을 되돌아보면서 가장 허망하게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수학공부로 인해 애를 먹었는가 하는 것이다. 암기에 가깝게 기계적인 문제풀이에 골몰했을 뿐 지금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고 쓰지 않으면 잊어 먹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옛날 읽었던 소설들의 내용을 기억 못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를 것이다. 이야기 줄거리를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의 느낌은 필자의 심성 밑바닥에 남아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기계적인 수학문제 풀이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 시간에 고전 한 권이라도 읽고 외국어공부를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필자가 소설 이외의 고전을 처음 독파한 것은 대학에 들어와 친구들끼리의 독서그룹에서였다.
교육내용 개선을 위해 또하나 고칠 것은 교과서제도다. 교육내용의 질을 높이려면 교과서의 질을 올려야 하고 그러려면 교과서에도 경쟁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국어 국사 등 국정교과서는 검정교과서로 바꾸고 검인정교과서는 자유발행제로 고쳐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1992년 결정에서 교과서에 관한 국정 및 검인정제도를 합헌이라고 판단했는데, 이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소는 과외금지에 선뜻 위헌결정을 내렸는데 교과서문제에는 왜 그리 보수적이었는가.
‘어떻게’ 교육하느냐는 문제에서 특히 강조할 것은 학생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페이퍼 작성과 작문숙제의 중요성이다. 스승의 날이면 필자는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 몇 분을 떠올린다. 그 중의 한 분은 고등학교 때 국어를 가르치신 김원호 선생님이다. 김선생님은 당시 이미 젊은 시인으로 등단하신 터였는데 한번은 작문숙제를 내주시고 일일이 평까지 써주셨다. 동급생 중에는 문학소년으로 이름이 났던 몇몇 친구가 있었고 이들의 서정적이고 감수성 예민한 글들은 글쓰기에 자신을 없게 만들곤 하던 때였다. 필자가 글쓰기 콤플렉스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김선생님의 작문 평에서 칭찬을 받고 난 다음이다. 교육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의 내용, 방법과 더불어 평가방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지금처럼 객관식 중심의 시험에만 의거한다면 내신제를 강화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 수능시험이라는 단판 승부 대신 여러 번의 기회를 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갖기 어려울 것이다.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과제물과 주관식 시험을 통한 분석력 및 창의력의 평가가 중심이 돼야 한다.
이처럼 교육의 내용, 방법이 변하고 이와 더불어 평가방식이 바뀌고 이 평가결과가 대학입시에서 중시돼야 정상적인 중등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
이런 이상적 그림이 제대로 현실화하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 하나는 교육재정의 확충이다. 교육방법과 평가방식을 개혁하려면 무엇보다도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교사의 수업시간 부담을 낮춰야 하는데 여기에는 돈이 들어간다.
다른 하나는 교사에 대한 신뢰 형성이라는 조건이다. 우리 사회는 모든 부문에서 사회적 신뢰도가 극히 낮은 사회다. 사회적 신뢰도보다 너무 앞선 평가방식의 변화는 부작용을 일으키기 쉽다. 때문에 개혁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점진적이나마 신뢰를 전제한 방향 설정은 확고해야 한다. 평가의 공정성만 염두에 둔다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 대학구조조정의 호기
교육의 내용, 방법, 평가방식의 개혁은 대학교육에서도 실현돼야 할 과제들인데, 이것들 외에 특히 대학교육에서 중시해야 할 점이 있다. 대학교육의 틀을 재구성하는 문제다. 1999년에 출간된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인 경제학자 모리시마 미치오(森嶋通夫)가 교육에 대해 주장한 것 가운데 특히 두 가지 내용이 인상적이다.
그 하나는 대학진학률을 낮춰야 고등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대학진학률은 인구의 약 40%에 이른다는데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태어난 사람 중에 40%가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대학교육의 내용이 쉬워서는 안된다. 대학이 반드시 필요한 교육내용을 고집하면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수업내용도 모른 채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그러한 사람에게 눈을 감고 졸업증서를 주면 증서는 면허의 의미가 없어진다.”
또다른 그의 주장은 “소수 특별한 대학 이외는 대학교수의 연구업적, 발표논문의 수가 조금 증가한다고 해서 교육수준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므로 연구따위는 무시하고 오직 교육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그랬던 모양이지만 한국에서도 이런 주장은 욕먹기 십상일 것이다. 대학교수들 가운데 강의가 좋아 교수가 된 사람은 극히 드문 것으로 보인다. 또 오는 2002년이 되면 고졸자 수보다 대학모집 정원이 넘쳐나는 미달사태가 온다는데 도리어 진학률을 줄여야 한다니 될 법이나 한 소린가 하는 반응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과연 대학원 수준에 걸맞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 곳이 전국 6백수십 개 대학원 중에 몇 군데나 될 것인가. 98년도 대학졸업자 취업률이 50% 수준인데 그나마 취업자의 일의 성격이 4년간 들인 시간과 돈에 상응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 것인가. 고학력 인플레로 인한 교육낭비를 이대로 방치해도 좋은가.
곧 다가오는 대학정원 미달사태가 대학구조조정의 호기가 될 수도 있다. 가령 이런 구상은 어떨 것인가. 소수의 대학원중심 대학을 제외하고 나머지 대학들은 학부교육에 중점을 둔다. 정원미달이 되는 대학에서는 정원의 상당부분을 전문대학 과정으로 전환한다. 한 대학 안에 4년제 학부과정과 2년제 직업교육과정을 병설하는 것이다. 지금 대졸자들이 하는 일의 상당부분은 집약적인 2년 과정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대학교육에 관해 덧붙일 말이 있다. 지방대학 육성을 위한 과감한 정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가장 결정적인 것은 지방을 살리는 일이고 지방을 살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대학 가운데 특화된 명문대학을 많이 키워내는 것이다. 아울러 각종 국가시험에서 정원 일부를 지역할당제로 충당하여 그 지역 대학 출신자를 우대하고, 합격 후 일정기간 그 지역에서의 복무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밖에 최근 대학에 불고 있는 벤처열풍에 대해 한 마디 첨언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돈벌기를 위한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만큼, 대학 역시 이 대세에 부응하는 것이 불가피한지 모른다. 그렇지만 돈벌기를 떠나서, 또는 긴 눈으로 보아 돈벌기를 위해서라도 당장 돈벌이와 관련없이 보이는 분야에서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듯이 몰두하는 연구자들이 몇 군데는 있어야 한다.
또한 세상 일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거침없는 소리를 해대는 집단이 있어야 한다. 모두들 돈벌이에 혈안이 돼서야 대학이랄 수 없다.
결국 교육이 새로워지려면 교육에 관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와 정부투자가 꾸준히 함께 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느 한 부분만 불쑥 내밀어지면 부작용만 커지게 된다.
● 의결기구 '교육정책위원회' 설치를
이런 관점에서 짚어둘 것이 있다. 교육개혁에 대한 환상을 버리자는 것이다. 하버드대학 총장을 지낸 복(Derek Bok)은 96년에 간행된 ‘국가의 현상태’(The State of the Nation)라는 책에서 분야별로 미국의 상황을 점검하고 정책방향을 모색하면서, 근래 미국에서의 교육개혁 시도에 대해 이런 요지의 결론을 맺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래 여러 차례 교육개혁이 시도되었다. 처음엔 학생들의 학력 증진을 위한 ‘위에서 밑으로’ 방식의 여러 개혁이 추진됐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자 이번에는 교사, 학부모, 일선학교 중심의 ‘밑에서 위로’의 방식이 시도됐다. 이어서 관료적 타성을 극복하기 위해 시장의 경쟁원리 도입 전략이 채택됐다.
그러나 이 모든 새로운 방안들이 시도되고 난 지금, 포괄적이고 성공적인 개혁이 일어나고 있다는 징표는 없다. 지금까지의 개혁노력에서 잘못된 관념은 위로부터 내려온 단일한 아이디어 전환으로 지속적 개선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교육을 바꾸려는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하다. 아직까지도 무엇이 성공적인 학교인지에 대한 합의도 이뤄져 있지 않다.”
정책당국이나 일반국민이나 우리는 너무 조급하다. 대통령임기는 단임이고 장관 수명은 더 단명이므로 서둘러 가시적 업적을 내고 싶어한다. 국민들은 당장에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다그친다. 그러니 시행착오의 혼란만 가중되고 도무지 교육정책의 안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
좀더 신중하고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교육정책이 이루어지도록 이런 제안을 한다. 대통령 직속 하에 단순한 자문기관이 아닌 의결기관으로 ‘교육정책위원회’를 설치한다. 교육전문가를 포함해 여러 분야의 중진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임기는 적어도 대통령임기보다 짧지 않게 한다. 일정한 기본적 교육정책은 반드시 그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장관도 여기에 구속된다.
교육문제에 특효약은 없다. 개혁의 방향을 바로잡고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은가.
● 필자(梁 建) 약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70
-텍사스(오스틴)대학 비교법 석사 1976
-서울대학교 법학박사 1979
-육군사관학교 법학과 교관 1972-1975
-한양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1985-현재
● 주요저서
-헌법연구 1995
-법사회학 198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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