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2년여를 끌어오던 협동조합 개혁이 7월1일 통합농협중앙회의 공식 출범을 앞두고 종착역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는 농가 부채, 수입농산물의 홍수와 농산물 가격의 폭락, 엎친데 덮친 격의 구제역 파동 등으로 우리 농촌은 장래에 대한 불안에 떨고있다. 어느 때보다 협동조합의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그러나 협동조합 개혁과정의 전말과 새로운 농협중앙회의 모습을 볼 때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더욱이 ‘통합농협법’의 위헌 여부를 놓고 축협중앙회와 농림부, 농협중앙회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공방을 보노라면 협동조합이란 무엇인가,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자율조직인가 아니면 정부 산하기관인가 하는 근본적 회의에 부딪치게 된다.
통합농협법의 내용이나 위헌 여부를 논하기 앞서 협동조합은 무엇이고 왜 개혁돼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은 본래 사회적 약자인 농민이 서로 협동하여 자신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조직하는 자주적 결사체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스스로 조직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고 통제돼왔기 때문에 조합원은 주인의 자리에서 배제돼왔다. 농업협동조합은 이러한 태생적 한계로 인해 그동안 ‘임직원을 위한 조합’ ‘권력의 시녀’ ‘독점자본의 파이프 라인’등 각종 비난을 받아왔다.
따라서 그간의 수많은 협동조합 개혁 논의의 핵심은 농업협동조합을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도록 해 본래 주인인 농민에게 되돌림으로써 ‘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협동조합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1988년말 임시조치법을 폐지, 조합장과 중앙회장을 정부가 임명하는 대신 농민이 직접 선출토록하고 농림부의 중앙회 사업승인권을 폐지하는 등 농·축협법을 개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협동조합 개혁도 원래는 이와같이 농업협동조합을 농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개혁으로부터 시작됐고 그를 위해서는 협동조합중앙회의 구조를 어떤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옳은가하는게 주요 논점이었다. 그런데 통합농협법의 제정과정 및 그 이후 일련의 진행상황을 보면 협동조합 개혁은 궤도를 이탈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축협중앙회가 청구한 통합농협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농림부는 협동조합중앙회는 공공성이 강한 특수법인이므로 정부가 법률에 의해 해산, 합병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협동조합 중앙회가 지역 조합을 회원으로 한 자주적 연합체란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협동조합 중앙회 창립총회는 무엇때문에 하였고 회장을 농민이 스스로 선출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공공성이 강하다고 해서 정부가 법률로 마음대로 해산하고 합병할 수 있다면 정당이나 시민단체도 독립성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 아닌가. 농림부는 농업협동조합중앙회를 농민의 자주조직이 아니라 정부 산하기관쯤으로 보고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농협중앙회가 농림부의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여 스스로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동안 기회있을때마다 통합농협법의 내용상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통합농협법의 내용이 아니라 협동조합의 정체성이라는 보다 근본적 문제에 직면해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심판 결과에 따라 우리나라 협동조합은 농민의 자율조직으로 거듭 태어날 것인가 아니면 수십년 후퇴하여 정부에 예속될 것인가하는 기로에 서있다. 이 점에 헌재 판결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도 농협과 축협을 주인인 조합원에게 돌려주어야한다는 당위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박진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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