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창선면 대방산에 일제가 지역의 정기를 없애기 위해 꽂아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쇠말뚝과 칼이 최근 창선면의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정상 주변에서 발견됐다. 2월부터 쇠말뚝을 찾아 대방산을 다니던 향토 연구가 황대성(62)씨와 창선면 박근실(44), 정병일(46)씨 등은 5월 5일 창선면 대방산 벼락재 바위 틈에 꽂혀있던 쇠말뚝 2개를 발견했다.이어 6일과 11일 황씨일행은 쇠말뚝 4개와 고리가 달린 칼 3개를 잇따라 발견했고 17일까지 쇠말뚝 9개, 칼 4개 등 모두 13개의 흉물을 찾아냈다. 이들은 ‘일제가 창선의 정기를 뺏기 위해 박아놓은 쇠말뚝과 칼’이란 심증을 갖고 방송사와 본사에 제보를 했다.
취재진은 15일 현장에서 공동조사를 벌이고 쇠말뚝과 칼을 수거해 국립진주박물관에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이 사실은 이 때부터 주민들에게 알려져 마을의 화제로 떠올랐다. 쇠말뚝을 처음 발견한 박근실, 정병일씨는 “초등학교 시절 대방산에 나무하러 왔을 때 쇠말뚝을 본 기억이 있다”고 말했고, 13년전부터 쇠말뚝을 찾아다닌 황씨는 “창선의 50대 이상 사람이면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일제가 마을 정기를 뺏기 위해 산에 불을 뜨고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임진왜란 당시 이충무공을 도와 큰 활약을 한 선봉 수문장 서수천 장군 등 3명의 장군이 이 지역출신”이라며 “이들 말고도 창선출신 장군이 21명에 달해 일본이 이 곳 정기를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흥분했다.
그러나 조사의뢰를 받은 진주국립박물관 학예연구사측은 “쇠말뚝은 일제가 측량을 하기 위해 꽂았을 가능성이 크고, 땅에 묻힌지 몇십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면 정확한 연대를 측정할 방법이 없다”며 뜨뜨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산 정상 등에 쇠말뚝과 칼이 꽂혀 있는 걸 보면 의도가 뻔한 것 아니냐”며 이제는 집단적으로 말뚝을 찾아나설 태세이다. 겉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일제의 잔재가 자식의 운을 가로막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어쨌든 ‘말뚝 사건’은 활력을 잃어버렸던 농촌마을에 모처럼 주민 단합과 생기를 가져다 주고 있다.
/한관호 남해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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