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22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보건복지부 기자실. 최근 전국을 휩쓸고 있는 각종 전염병의 창궐에 대한 ‘책임있는’보건당국자의 ‘공식 코멘트’였다.
이달 들어 서울 등 중부지방에서만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배 이상의 홍역 환자가, 남부지방에서는 세균성 이질이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국민들, 특히 어린아이를 둔 학부모들마다 잔뜩 불안해하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도 자못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이유가 오히려 의아했다.
바로 ‘숫자놀음’이었다. 이 당국자가 내민 보도자료 ‘하절기 전염병 관리 추진현황’에 따르면 세균성 이질 환자는 지난해 같은기간 보다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홍역환자의 급증은 3-5년 주기로 반복되는 ‘당연한 현상’이라는 논리였다.
적어도 통계수치로만 보자면 그럴 지도 모른다. 또 ‘정부 통계’이니만큼 전혀 틀린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처럼 전염병 발병을 당연시하는 것은 정부 방역 담당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전염병의 직접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이 국민이다. 전염병을 예방할 의무가 정부에 있다는 규정은 법에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전염병으로 학교가 문을 닫고, 의료기관이 홍역환자로 넘쳐나는데도 ‘수치타령’만 늘어놓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올해 뿐이 아니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신속한 방역대책 수립보다는, 책임을 비껴가기 위해 애써 의미를 죽이느라 늑장 대응이 매양 되풀이 된다. 이러니 “우리나라의 방역(防役)은 방역(放役)”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김진각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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