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옥의 티 잡힐라" 조심 또 조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옥의 티 잡힐라" 조심 또 조심

입력
2000.05.24 00:00
0 0

KBS '태조 왕건' 의상·소품KBS 아트비전 사무실. ‘태조 왕건’ 의상담당 배낙환씨는 투구에 박힌 나사못의 십자홈에 열심히 석고 땜질을 하고 있었다. “요샌 카메라 감도가 예민해져서 금방 흠이 잡혀요. 그 시절에 십자나사못이 웬 말이냐고 당장 지적이 들어옵니다.”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주물 틀에서 찍혀 나온 투구의 뚜렷한 선도 석고로 눙쳐 주어야 한다.

사무실 한켠에는 여나믄 개의 플라스틱 투구가 페인트칠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장에서 막 나온 투구는 옅은 회색의 바가지 모양으로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서 한 시청자의 지적대로 영락없이 ‘공사장 안전모’같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투구 원형에 보다 가깝게 재현하기 위해 직급에 따라 회색, 금색 등으로 대여섯 겹씩 덧칠을 하고 마지막으로 무광 라커를 칠한다. 광택을 죽이지 않으면 보기에도 옛날 태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화면상에 부옇게 반사되는 할레이션이라는 현상이 생긴다.

투구뿐 아니라 의상도 시청자 지적에 따라 수시로 ‘리콜’을 받는다. 견훤의 책사 능환(정진)의 갑옷은 마치 댄스 가수들의 무대의상처럼 ‘사이버’톤으로 번쩍거려 재질을 바꿔 다시 제작했다. ‘허준’의 은은한 파스텔톤과 흔히 비견되는 화려하고 원색적인 궁중복은 ‘신라 말기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사치가 극심했다’는 복식사 문헌의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한 것이지만 앞으로는 시청자의 심미감을 고려해 색깔의 톤을 낮출 예정이다.

전투 장면이 많은 사극의 의상은 제작팀뿐 아니라 연기자들에게도 고역이다. 물고기 비늘 같이 생긴 갑옷의 장식 ‘미늘’이 특히 애물단지. 10여년 전만 해도 미늘을 쇠로 만들었기 때문에 보통 갑옷 무게가 10㎏ 이상이라 전투는커녕 그냥 입고 있기도 힘들었다.

요즘은 합금으로 만들어져 무게가 3분의 1 이하로 줄었지만, 특수의상의 경우 고생은 여전하다. ‘용의 눈물’에서 이성계(김무생)가 입었던 황금쇠사슬 갑옷은 총무게가 20㎏으로 두 사람이나 시중을 들어야 겨우 입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매회 300명에서 500명이 넘는 연기자들에게 이런 옷을 일일히 입혀줘야 합니다.”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크다. 의상디자인팀장 유수정씨는 이렇게 말한다. “흔적이 없는 시대를 재현하는 일이니까요, 시청자의 꼼꼼한 지적이 덧붙여진 소품이 한벌 한벌 쌓일 때마다 뿌듯합니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