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이 22일로 통일 10주년을 맞았다. 1990년 이날 남·북 예멘 정상이 통합합의서에 서명한후 남예멘의 분할기도 등 위기가 잇따랐으나 예멘 국민들의 통일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통합을 달성했다고 감히 장담한다”고 관영 주간지 ‘9월26일‘은 흥분된 어조로 보도했다.예멘 정부는 이날 수도 사나에서 통일 이후 처음으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세자 등 그동안 소원했던 지역 아랍국가 지도자를 포함한 47개국 사절을 초청한 가운데 성황리에 기념식을 가졌다.
이번 행사는 아랍 국가들에도 걸프전 당시 예멘이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생긴 상호 반목을 불식할 기회가 됐다. 예멘은 도로 마다 국기를 내걸고 폭죽을 터뜨리는 등 축제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1억6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예멘의 떠들썩한 축하행사가 외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자화자찬으로 끝난 이유는 뭘까. 통일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국민들은 통일의 수혜를 보기는 커녕 통일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통일국가 =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77%였던 인플레가 통일후 4%로 떨어지고 외채가 90억 달러에서 30억 달러로 감소했다”고 자평했지만, 예멘은 ‘유엔분담금을 못내 총회 투표권을 상실한’ 아랍 최빈국이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사우디 아라비아가 예멘 노동자 150만명을 추방한 후 외화 송금원이 사라졌다.
이어 국경문제를 둘러싼 사우디와의 군사 충돌은 예멘 경제를 빈사상태로 몰아갔다. 1995년에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개혁 시나리오도 거부, 국제적 외톨이가 됐다.
◆여전한 남북문제 = 합의에 의한 ‘무혈 통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무려 18년간 진행된 통일협상은 양쪽 정치인들의 정권재창출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고, 결국 1994년 동족상잔을 낳았다. 내전은 이 나라에 13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남북 모두에 뿌리깊은 불신의 골을 만들었다.
북예멘은 힘으로 남예멘을 굴복시켰지만, 남쪽이 갖고 있는 위화감을 잠재우진 못했다. 남예멘인들은 자신들보다 나은 경제력에다 권력을 독점한 북쪽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1962년 남예멘의 공화제 이행 이후 시작된 오랜 내전으로 수만명이 희생됐다.
◆미완성 통일 = 예멘의 통일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1990년 이후 무장한 부족들에 의해 무려 200여명의 외국인, 특히 서구인들이 인질로 잡혔지만 예멘 정부는 그때마다 속수무책이었다. 부족들은 정부 또는 외국과 석유 등 특정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툭하면 인질 사건을 일으킨다.
예멘 정부는 험준한 산악지대에 산재해 있는 부족들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예멘의 야당인 사회당의 압둘라 바이다르는 “통일 축하 행사의 이면을 바라보면 국민간 분열은 여전히 남아있다”면서 “집권당이 권력과 부(富)를 독점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쓰레기를 뒤지며 먹거리를 다투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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