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李漢東)총리지명자는 차기 대권주자로 거명되는 인사중 가장 보수적색채가 강한 정치인이다. 1997년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 대선후보경선에서 이회창(李會昌) 이인제(李仁濟)씨에 이어 3위를 한뒤 정치외곽으로 밀려났다가 올들어 자민련 총재로 변신,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판사를 거쳐 서울지검 형사부장으로 근무하던 80년 신군부의 눈에 띄어 정계에 입문, 11대 이후 단 한 번의 낙마없이 6선 고지에 올랐다.
86년에 민정당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5공이후 국민의 정부 출범이전까지 원내총무 3번, 정책위의장과 사무총장 각 1번 등 여당에서 5차례나 당3역을 지내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애주가로 대인관계가 좋은 호방한 성품이 사법 행정 입법 3부에서 화려한 관록을 쌓는 밑거름이 됐다. 현재는 이력서에 주량을 포도주 반병이라고 적을만큼 술을 멀리하고 있다.
민정·민자당을 거치면서 당내에 독자계보를 유지하기도 했으나 97년 대선 경선패배이후 급격히 세가 기울었다. 결국은 지난해 말 이회창총재가 장악한 한나라당을 탈당, 보수정당인 자민련 총재로 말을 바꾸었다.
자민련의 4·13 총선참패로 위기를 맞았지만 공동정부 공조복원이란 명분을 업고 총리에 발탁되는 행운을 잡았다.
정치적 중재력이 뛰어나고 ‘일도(一刀)선생’이라는 애칭만큼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하다는 평이지만 정작 정치적 결심이 필요할 때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없지않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는 73년 ‘김대중 납치사건’과 관련, 일본측이 당시 김대통령의 신변안전을 확인하기위해 주한일본대사를 동교동 자택으로 보냈을 당시 서울지검 검사로 배석한 것이 첫 인연. 그러나 개인적 관계는 없었다.
조남숙(趙南淑·64)씨와 1남2녀 경기 포천·66세 경복고·서울법대 11-16대 의원 민정당 사무총장·총무·정책위의장 내무장관 국회부의장 신한국당·한나라당 대표
이동국기자 east@hk.co.kr
■이한동과 김윤환 - 엇갈린 정치운명
“세상사가 다 그런거지.”이한동(李漢東)자민련총재가 신임 총리로 지명된 22일 민국당 김윤환(金潤煥)의원의 한 측근은 코멘트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에는 정치의 덧없음에 대한 자조가 짙게 배어났다.
민정당시절부터 구여당에 함께 몸담았던 두 사람은 20년 가까이 경쟁과 협력 관계속에 정치경력을 쌓아 왔다. 한나라당 시절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소원한 관계였던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올해 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이 신임총리서리는 1월에 스스로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갔다. 반면 두차례나 ‘킹 메이커’로서의 성가를 높였던 김의원은 당에 남아 있다가 공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고 타의로 당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
한나라당과의 결별의 모습이 달랐던 것처럼 이후의 두 사람의 처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신임총리서리는 곧바로 자민련총재로 변신했고, 마침내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김의원은 다른 공천탈락자들과 함께 민국당 창당대열에 합류, 4·13총선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지역구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이신임총리서리는 앞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차기대권주자의 꿈을 키워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김의원에게는 현재로서는 칩거(蟄居)외의 다른 선택이 없어 보인다. 이날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두 사람의 엇갈린 정치 운명에 대해 여러 말들이 오갔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