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이한동(李漢東)총리 지명은 여권내 역학구도의 조정이 은근히 시작됐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공조복원이 이총리 지명의 직접적인 메시지라면, 그 이면에는 범(汎)여권의 인재 풀, 나아가 ‘차기 대선주자 구도’를 어떻게 설정하고 관리하느냐하는 방향성이 엿보인다.
이총리가 지명됐다고해서 당장 여권내 역학구도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이총리내정자의 파괴력이나 대중성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총리의 등장은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알리듯’ 차기 구도가 이인제(李仁濟)고문의 독주로 특징지워지지는 않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여권의 한 고위인사는 “차기 구도를 논의할 시점은 아니지만, 이총리 지명에 차기 구도의 다원화라는 함의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총리가 차기 주자군에 속할 지는 두고봐야 하나, 이번 인선에서 인재 풀을 넓히겠다는 김대통령의 의중을 읽을 수 있지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렇다고 이같은 다원화 포석이 이인제고문을 견제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게 여권 핵심인사들의 설명이다.
차기 주자 후보감이 단수로 굳어지면, 당사자는 집중적인 견제를 받을 수 있고 만약 이 후보감이 상처를 입을 경우 여권 전체가 대안부재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게 다원화 포석의 논거다.
이고문과 여권 전체를 위한 안전장치라는 얘기다. 아울러 ‘차기 주자는 누구’라는 전망이 대세로 자리잡으면, 권력누수 등의 후유증으로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봐야한다.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의 민주당 입당설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여권내에 “정의원과 민주당의 기반이 배치된다”는 회의적 시각이 강해 입당이 실현될 지는 미지수이지만 범여권의 인재풀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 이인제고문이 22일 오후 청와대로 김대통령을 방문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미 오래전에 잡혀있던 일정으로 이총리 지명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대통령과 이고문이 이총리 지명에 대해 의견을 나누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날의 면담 자체가 차기구도의 은근한 관리가 이미 시작됐음을 말해주는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이고문 이총리 고건(高建)서울시장 한화갑(韓和甲) 김근태(金槿泰) 노무현(盧武鉉)의원 등 여권내 인물들이 많아지고 이들의 경쟁을 통해 강한 차기 주자가 나오도록 한다는 게 다원화 포석의 골자”라고 말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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