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을 손봐야겠다고 벼르던 대한상의가 행동에 나선 것은 1968년 4월이었다. 대한상의 회장단이 부산에서 전격 회동했다. 그리고 대정부 건의서가 정부요로에 뿌려졌다. ‘임의단체인 전경련이 국가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대한상의의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 당시로는 미처 10년도 안된 새까만 후발단체인 전경련이 정권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것이 눈꼴 사나웠던 것이다.■대한상의는 내친 김에 이듬해 상의법 개정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전경련을 아예 대한상의의 산하기구로 흡수병합하기 위해 로비에 나선 것이다. 뒤늦게 낌새를 챈 전경련이 결사저지에 나서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 직전 가까스로 무산된다. 이 파동을 계기로 전경련이 다소곳해지고 대한상의는 한동안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재계의 수장자리를 둘러싼 대한상의와 전경련의 갈등사는 이처럼 뿌리가 깊다.
■최근 박용성 두산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에 취임하면서 두 단체의 기류가 다시 미묘해지고 있다. “대한상의가 맏형이니 경제단체를 나열할 때 맨앞에 놓아달라”며 상의의 역할론을 강조한 박회장의 취임회견과 이후 상의의 내부개혁 작업에 전경련측은 자못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재계 수장론을 놓고 두 단체 관계자들 사이에 간접적으로 오가는 가시돋친 언사들도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더욱이 두 단체장의 태생적 연(緣)마저 기이하다.
■60년말 상의법 개정 파동을 불사하며 대한상의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였던 이가 다름아닌 박 회장의 부친인 고 박두병 회장이다. 그런가하면 당시 파동직후 전경련을 맡아 방어에 나섰던 이는 김각중 현 전경련회장의 선친인 고 김용완 회장이다. 부전자전인지, 특히 박회장은 소문난 ‘불도저’이다. 때마침 이웃 일본에서 경제단체들의 합병 바람이 불고 있는 것도 왠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송태권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