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는 아무나 쓰지 않는다. 자신의 자(尺)로 요모조모 재어 본 뒤 검증된 사람만 쓴다. 그래서 사람을 쓰는 데 짜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한번 쓰면 좀체로 버리려 하지 않는다. DJ정권에서 문책인사가 거의 없는 것은 이런 데서도 기인한다. DJ는 또 생판 모르는 사람을 쓰지 않는다. DJ 인재풀에 있는 사람을 빼내다가 쓴다. DJ 수첩에 적혀 있는 사람들이 인재풀이다.DJ는 나름대로 용인(用人)의 원칙이 있다. 우선 실사구시적이다. 학력이나 경력보다는 기능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정권들어 상고출신이 정부 요로요로에 기용된 것이나, 지방대 교수가 주요부처 장관으로 기용된 것 등이 그런 흔적이다. DJ가 목포상고 출신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딱이 그런 것만은 아니다. DJ는 또 즉흥적으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 인재풀에 가용인력이 많지 않은 것, 주변에 양성된 인력이 적다는 것, 그리고 정권의 기반이 소수라는 것 등이 원인일 수가 있다.
이런 용인의 원칙은 국정운용에 장점으로 또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대표적 단점으로는 공직사회가 늘 이완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은 적절하게 배합돼 있어야 한다. 메기가 있는 양어장과 없는 양어장의 물고기가 다르게 성장하는 이치와 같다. 있는 쪽의 물고기가 훨씬 건강하다. DJ 정부의 사람들은 지금 메기 없는 양어장의 물고기와 같다.
또 하나의 단점으로는 교체의 타이밍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이 정권들어 몇번의 문책성 인사가 있었는데, 대부분 타이밍을 놓쳤다. 박태준씨 경우는 좀 의외다. 욕은 욕대로 싫컷 먹고 경질의 효과는 별로 거두지 못했다. 지금도 그런 경우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금 경제는 심상찮다. 지난 주엔 국제 신용평가 기관이 우리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처음으로 한 단게 낮췄다. 그런데도 경제관료들은 펀더멘틀 타령만 하고 있다. IMF 직전과 똑같다. 국민들은 그때 관료들의 펀더멘틀 타령을 듣다가 나라가 망하는 줄도 몰랐다. 이젠 IMF가 온다해도 더 이상 빼낼 금반지도 없다. 경제관료들이 DJ 용인의 원칙을 과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DJ 용인의 원칙에 ‘편중인사’란 없다. DJ는 애초부터 정권 인맥이 각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편중인사의 시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나변(那邊)에 있는가.
정권의 연고인맥이 요직을 차지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정권이 바뀌면 그 정권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서라도 당연히 연고인맥이 요직을 차지한다. 미국등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도 다 그렇다. 정권의 요직-군 검찰 안기부 국세청 경찰청-에 호남출신이 많은 것은 이해된다.
문제는 편중인사의 ‘확대 재생산’에 있다. 연고와 인맥은 정부의 요직에서 끝나지 않고 그 산하부처와 기관, 정부 투자기관, 심지어 일반기업에 이르기 까지 줄줄이 이어지며 파급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일반 기업은 왜 영향을 받는가. 유유상종의 기대심리가 작용하는 탓이다. 영남정권때에도 똑같이 그랬다. 호남사람들은 그때 일반 기업체에서도 불이익을 당했다. 이런 현상의 후유증은 절대 가볍지가 않다. 시계추의 원리를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시계추는 너무 멀리 나가면 되돌아 올때 그 반작용으로 또다시 멀리 가고 만다.
DJ는 집권 후반기 용인의 원칙을 재정비 해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정권의 연고인맥 파급현상을 차단하는데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우선 한번 쯤 정부기관이 아닌 다른 채널을 통해 공직사회 전반의 인맥 실상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하면 DJ 정권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면서 편중인사의 빌미를 주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알게 될 것이다.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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