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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재상' 128일만에 중도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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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재상' 128일만에 중도하차

입력
2000.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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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총리 사임까지‘철강왕’과 ‘공동여당 총재’를 거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던 박태준 총리가 4개월여만에 중도하차했다. 박총리가 올 1월13일 총리에 취임할 때만 해도 ‘부동산 명의신탁’이란 암초에 부딪쳐 128일만에 불명예 퇴진하리하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김종필 전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에 취임한 뒤 ‘행정총리’역할을 자임하면서 경제, 정보통신 문제 등 국정현안을 꼼꼼하게 챙겨왔다. 자민련이 지난 2월 하순‘야당선언’을 하면서 박총리에게도 거취 정리를 간접 주문했으나 그는 자민련 당적을 버리지 않았다.

이로 인해 JP측과 TJ측 사이에는 긴장 기류가 있었다. 4·13총선 이후 그는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복원을 위해 김명예총재와 만나려 했으나 JP는 이를 완곡히 거절했다.

박총리는 19일 오전 중앙청사에서 이임식을 갖고 “도덕적 문제가 생기면 바로 거취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공직자의 사명“이라며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국민의 정부에서 물의를 빚은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총리는 이어 “남북정상 회담을 훌륭히 치러낼 수 있도록 대통령을 잘 보좌해달라”고 당부했다.

박총리는 ‘포철 신화’를 이룩하고 4선 의원에 구 민정당 대표위원, 구 민자당 최고위원, 자민련 총재 등을 거치며 화려한 경력을 쌓았으나 정치 역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1927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박총리는 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박총리는 이어 육군소장으로 예편, 대한중석 사장을 거쳐 68년부터 포항제철 사장으로 입신, 우리나라 철강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1980년 신군부가 주도한 국보위 입법회의 경제분과 위원장을 거쳐 81년 11대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본격 입문했다.

정치인 TJ는 5·6공때 탄탄대로를 달렸으나 노태우 전대통령 임기말 민자당 대선후보 경선 때 김영삼 전대통령의 반대편에 서면서 가시밭길을 걷는다. 93년 ‘문민정부’ 출범 직후 포철의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한 것은 물론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박총리는 일본으로 건너가 4년여간‘망명생활’을 하다가 귀국해 97년 7월 포항 북구 보선에 출마, 당선됐다.

그는 97년 9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와 `도쿄(東京) 회동'을 통해 동반자관계를 설정한뒤 97년 11월 자민련 총재로 영입돼 `DJT 연대'에 참여했다. 그의 총리직 취임은 ‘DJT연대’의 결과물이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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