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감사·예산등 禁女의 벽 무너져“남자직원의 2∼3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밤을 새워 일한 덕에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공무원 경력 31년인 중앙부처 S과장)
“보직을 주면서 큰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생색을 낸다. 지방의원이 시정질의를 통해 왜 여성에게 주요 과장을 맡겼느냐고 따질 정도다.”(7급 공채로 들어온 모 지방자치단체 P과장)
공직에 몸담은 여성들은 괴롭다. 관직을 남성들이 독점해온데다 가부장적인 유교문화의 전통이 뿌리깊어 관리직 진입장벽이 너무 두껍기 때문이다. 89년 이전까지만 해도 공무원 채용시 여성비율이 1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한 국가 및 지방공무원법 임용령이 이를 여실히 말해준다.
조직에서 적응하고 승진하기 위한 몸부림도 애처롭다. 부서의 마스코트 역할을 자임하는 ‘애완형’에서 ‘어머니형’ ‘유혹형’ ‘철의 여인형’(캔터 교수 분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여성의 교육열과 성취욕은 매우 높은 데 비해 행정관리직 진출은 필리핀이나 태국은 물론 이슬람권인 쿠웨이트보다도 저조하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간한 99년도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교육과 경제활동 등 남녀평등 차원에서 여성의 삶의 질 수준을 평가한 여성개발지수(GDI)는 143개국 중 30위로 상위권에 속한다. 반면 의회진출과 행정관리직 비율 등을 감안한 여성권한척도(GEM)는 102개국 중 78위로 하위권이다.
공직에 진출해도 하위직에 대거 몰려 있어 조직에서 발휘하는 영향력도 미미하다. 98년말 현재 여성공무원 비율은 29.7%(26만3,853명) 지만 행정부 일반직 가운데 1급은 한 명도 없고 2급에만 3명(0.7%)이 있을 뿐이다. 과학기술부 등 7개 중앙부처와 25개 지자체에는 5급 이상 여성공무원이 한명도 없다.
그러나 최근 고위직이나 인사·감사·예산 등 남성들이 장악해온 주요보직에 여성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행자부는 여성의 관리직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올해 안에 각 부처와 자치단체에 5급 여성공무원 1명 이상 배치를 의무화하고, 여성이 없는 기관에는 6급 공무원 중 여성을 우선적으로 승진시키기로 했다.
이에 대해 남성들의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정부과천청사에 근무하는 P사무관은 “군가산점제도가 폐지된 마당에 여성을 우대하는 채용목표제(2002년까지 5·7급의 20%)를 시행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며 “내놓고 말은 않지만 동료들이 상당히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회 여성특위 박숙자(朴淑子) 정책연구위원은 “여성이 관직을 갖는다는 것은 능력이나 적성에 관계없이 크게 제한돼 왔다”면서 “여성들도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경험할 수 있도록 순환보직제를 강화하고 승진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정화기자jeong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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