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과 서강을 지키는 사람들● 최병성(崔炳聖) 196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장로회신학대와 대학원을 나왔다. 94년부터 영월에 와 서강변에서 혼자 살고있다. 1995~96년에는 영월교회에서 목회활동도 했다. 지난해 8월 영월군이 쓰레기매립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자 쓰레기종합처리장설치반대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중이다.
● 엄삼용(嚴三鎔) 1967년 강원 정선에서 태어났다. 아주대 산업공학과를 나와 한국 다이요잉크의 사내 연구소에서 국제품질인증(ISO)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했다. 1998년 동강사이트를 개설, 동강의 아름다움과 생태계를 사람들에게 알렸으며 현재 영월에서 동강보존본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동강과 서강이 흐르는 강원도 영월. 유유히 흐르는 강물만큼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 곳이 요즘 다시 시끄럽다. 동강에 홍수조절용댐이 건설된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서강에는 쓰레기처리장이 건설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동강과 서강의 지킴이로 나선 두 사람이 만나 왜 이들 시설을 지으면 안되는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_ 지금 동강과 서강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 엄삼용 = 갑자기 동강에 홍수조절용댐을 건설하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와 주민들이 어리둥절해 합니다. 영월댐백지화투쟁위원회를 중심으로 홍수조절용댐 건설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만 정부의 공식 발표가 아니라서 주민들은 아직 적극적인 대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 최병성 = 영월군이 북면 덕상리 거리실에 쓰레기처리장을 건설하겠다고 해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처리장 예정지는 서강과 가까운 곳이어서 침출수가 강으로 흘러들 수 있거든요. 그러면 식수원도 오염시키고 생태계도 파괴될 수 있어요. 그래서 반대하는 것이지요.
_ 홍수조절용댐이나 쓰레기처리장이 들어서면 왜 안된다는 것입니까.
▲ 엄삼용 = 실제로 지으려는 건 지, 지으면 규모가 어느 정도가 될 지 공식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어떤 댐이든 일단 건설되면 상당 지역이 물에 잠깁니다. 한번 잠기면 비록 수몰기간이 짧다해도 생태계는 파괴될 수 밖에 없어요. 다목적댐이 저항을 받자 규모를 줄여 홍수조절용댐을 짓겠다는 것인데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지요.
▲ 최병성 = 처리장을 건설하려는 것은 주민의 목숨을 담보로하는 무모한 도박입니다. 처리장이 들어설 곳은 10㎞ 지점에 충북 제천 주민의 취수장이 있고 13㎞ 되는 곳에는 영월군 서면, 18㎞ 되는 곳에 영월군 남면 주민의 취수장이 있기 때문이죠. 침출수가 나오면 취수장으로 흘러들 게 뻔합니다. 상수원에서 15㎞ 이내 지역에는 폐기물을 버리지 못하도록 돼있는 폐기물관리법에도 어긋납니다. 영월군은 침출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만들겠다고 하지만 누가 믿겠습니까. 처리장치고 침출수 안나오는 곳이 없는데다 홍수라도 들어 침출수가 넘치면 어떡하겠습니까.
▲ 엄삼용 = 그런데도 왜 처리장 건설을 강행하려는 것인가요.
▲ 최병성 = 행정편의주의 때문이죠. 전문가들이 최적의 후보지를 선정해 제시한 적이 있는데 그곳 주민들이 반발하자 군청이 일방적으로 거리실로 정해버렸어요. 주변에 인구가 적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환경이나 경제성은 뒷전이고 반발하는 주민이 적어 건설이 쉬울 것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죠.
_ 동강이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서강은 대체 어떤 강입니까.
▲ 최병성 = 절벽이 높고 물살이 힘찬 동강이 지아비강이라면 절벽이 야트막하고 물살이 느린 서강은 지어미강이랄 수 있죠. 두 강은 영월읍에서 만나 남한강으로 흘러듭니다. 서강도 동강 못지않은 생태계의 보고랍니다. 수달 원앙 파랑새가 살고 어름치 쉬리 등 한국특산어종 30종중 17종이 살고 있습니다. 또 하나, 요즘 사람들이 강물을 떠다 그냥 마시는 곳 보셨어요? 서강은 그런 곳입니다. 괴골마을, 선암마을 사람들은 서강 물을 떠다 식수로 쓰고 있어요. 역사 유적도 많아요. 단종이 숙부 세조에 의해 유배됐다 사약을 마신 청령포가 바로 서강 변입니다. 영월군이 4월마다 단종제를 지내면서 서강에 쓰레기 물을 흘려보내겠다는 것은 단종을 두번 죽이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_ 그런데 두 분은 대체 어떤 인연으로 동강·서강 지킴이가 됐습니까.
▲ 엄삼용 = 정선군 신동읍 조동7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워낙 깊은 산골이어서 산과 골짜기만 보았을 뿐 바로 옆에 있는 동강에는 가보지 못했어요. 중학교때 원주로 유학을 떠났고 그 뒤 가족들과 인천으로 이사했습니다. 동강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97년 추석 무렵입니다. 휴가 때 동강 어라연을 찾았던거죠. 강 가운데 박혀있는 기암과 바위 위에 꼿꼿이 서있던 나무들이 충격을 주었어요. 하지만 그때도 댐이 건설될 것이란 이야기가 나돌았어요. 이곳이 잠길 거라는 생각이 들자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 뒤 주말마다 찾았고 지난해 5월에는 아예 사표를 내고 영월에 내려왔습니다. 한마디씩 하더군요. 거기서 뭘하면서 먹고 살거냐고요. 하지만 굶어죽기야하겠느냐는 배짱이 생겼습니다. 하기야 인천서 살 때도 주말마다 동강 내려오느라 월 100만원은 썼으니까 돈도 못모았어요. 퇴직금을 까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것도 없습니다.
▲ 최병성 = 영월과는 아무 인연이 없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저는 신학대 재학 시절 우리 교회가 너무 세속화, 물질화했다는 생각이 들어 신앙적으로 많은 번민을 했습니다. 세속적인 성공이나 물질적 풍요와 거리를 두고 성경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강원도 산골 영월에 오게 됐습니다. 94년 6월이었죠. 영월에 오니 마음이 참 편해지더군요. 제가 사는 집이 서강 바로 앞에 있는데 조용히 흐르는 강물을 보거나 비오리나 원앙이 새끼들에게 자멱질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영월에 와놓고는 2년동안 아는 분의 권유로 영월교회에서 목사로도 일했습니다. 신앙의 의미를 찾고 이를 책으로 옮기려는 작업을 하던 중에 이 일이 터졌습니다.
▲ 엄삼용 = 저는 동강이 어떤 강인지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98년 8월 동강사이트를 개설했습니다. 동강과 관련한 최초의 사이트죠. 지금까지 17만명이 접속했습니다. 요즘은 외국서도 접속을 하고 외국서 공부하는 우리 젊은이들이 관련 정보도 보내옵니다. 지난해 11월에는 동강보존본부를 발족했습니다. 아직 기구가 제대로 꾸려지지 못했지만 동강에 댐이 건설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보전해야 하는지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 최병성 = 사실 처음 처리장 건설 계획이 나왔을 때 주민들은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몰랐어요. 순박하게 살아온 주민들이 관공서와 싸울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안되겠더라고요. 이 고장 출신도 아닌 제가 주제넘게도, 주민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이제는 모두들 적극적입니다. 언론사에 서강 자료를 배포하고 영월읍 주민들에게 부당함을 알리는 유인물도 나눠주고잇는데 제가 직접 만든 겁니다. 사이트도 개설했는데 그 덕분에 컴맹이던 제가 제법 컴퓨터도 다룰 수 있게 됐습니다.
_ 동강과 서강의 상황이 다른 점도 있겠군요.
▲ 엄삼용 = 동강에 댐이 건설되지 않더라도 수몰예정지 주민에 대한 대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말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라 댐 건설에 따른 수몰 보상비를 받아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하려고 했어요. 앞으로 동강 주변을 생태계보전지역이나 생태관광지로 묶어 출입 인원을 제한해야겠지만 일단 동강에 들어온 사람들을 위한 관광가이드나 민박집 운영 등은 수몰예정지 주민에게 우선권을 주는 등 경제적 이득을 줄 수 있는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최병성 = 동강하면 래프팅을 떠올리는데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면서요.
▲ 엄삼용 = 그렇죠. 지난해 동강댐 건설 반대운동이 동강을 지나치게 홍보하는 결과를 낳으면서 관광객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래프팅업체도 100곳이나 되고 많을 때는 하루에 1만여명이 래프팅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물고기들이 제대로 번식을 못해요. 민물고기는 대부분 강바닥에 돌멩이로 산란탑을 쌓고 그곳에 알을 낳는데 고무보트가 다니자 산란탑을 쌓질 않고 있어요. 비오리같은 새도 보트가 지나다니고 래프팅하는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자 멀리 떠나가고 있습니다.
▲ 최병성 = 서강 선암마을 부근에는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한반도 모양을 한 곳이 있습니다. 영월군이 그곳에 관통도로를 내겠다고 합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란 치욕도 부족해 이곳을 반토막내는 도로를 개설해 또 하나의 휴전선을 만들겠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서강이 동강처럼 유명세를 치르지나 않을지도 걱정됩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서강은 또 어디냐”며 궁금해합니다. 사람들이 강가로 몰려와 먹고 마시고 떠들어대면, 그것 역시 서강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쓰레기처리장 건설과 다르다 할 수 없겠죠.
_ 두 분은 이곳에서 계속 살 생각입니까.
▲ 엄삼용 = 그럼요. 제가 어떻게 동강을 떠나 살 수 있겠습니까.
▲ 최병성 = 아내가 경기 광명에서 살고 있는데 올 연말이나 내년초 이곳으로 와 저랑 같이 살기로 했습니다. 이곳에서 아주 눌러 살 생각이에요. 무덤자리까지 봐두었는걸요. 서강은 이미 제 마음속의 고향이 됐습니다.
진행·정리 =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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