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합격생이 쓴 서울대 들어가는 방법에 관한 책이 시중에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대부분의 입시생과 학부모들은 서울대라는 환상에 목을 매고 있다. 서울대라는 이름이 주는 사회적 위력과 프리미엄이 가히 엄청나기 때문이다.이러한 왜곡된 현상은 단순히 입시제도의 문제보다는 대학제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한 가운데는 서울대가 있다. 서울대는 이미 여러 대학 중 하나의 대학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학제도 그 자체가 되었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 교육제도가 되어버렸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여 각 사립대와 지방국립대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일렬로 줄서서 서울대를 바라보고 있다. 고등학교들은 뭐니뭐니해도 서울대합격률을 높이는 것이 최선의 목표가 돼버렸다.
하지만 서울대를 향한 이러한 애끓는 국민적 애정이 고작 짝사랑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서울대는 수많은 지도자들을 길러냈고, 얼마 전에는 대통령까지 배출했다. 그 분은 이유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외환위기로 시작된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고위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거품경제와 외환위기로 인한 국가적 위기의 징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던 높으신 분들 중 대다수가 서울대 출신이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중에 외환위기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노라고 용기있게 고백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모두들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서구 명문대학 출신들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신분에 걸맞게 행동하는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에 공헌하는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몇몇 사례를 들어 서울대 출신이나 서울대 자체를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훌륭한 인품으로 사회에 등불이 되시는 분들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서울대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서울대가 받아온 차별적 특혜와 명성만큼 우리 사회에 대해 공헌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가 그 동안 누려온 차별적 특혜와 명성에 걸맞는 수준으로 우리 사회에 공헌했는지를 따져보면 상당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대다수 입시생과 학부모들이 서울대라는 이름에 대한 환상 때문에 입시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 왜곡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이 서울대 폐교론을 제시한 적도 있다. 하지만 서울대의 폐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대안이다. 오히려 서울대를 보다 더 확장하여 여러 개의 서울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종국적으로는 모든 대학의 서울대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대학을 평준화하는 것이다. 수학능력이 있는 아이들은 누구나 ‘서울대’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하되, 엄격하게 관리하여 공신력있는 자격고시를 통해서만 졸업할 수 있게 하면, 대학이름에 목을 맬 이유가 없게 될 것이다.
대학평준화에는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가 도움이 되질 않는다. 미국은 역사적·종교적 배경 때문에 주립대학보다는 사립대학이 더 우수한 경우가 있고, 일본은 교육제도에 관한 한 군국주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후진국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평준화 사례는 유럽국가들인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는 대학들 간에 교수와 학생의 호환이 거의 완벽하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1960년대에 파리에 있는 대학들에게 아예 일련번호를 붙여 대학평준화를 실현했다. 우리도 대학을 평준화하여 수많은 ‘서울대’를 만든다면, 과외망국의 입시지옥으로부터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최동석 조직개혁전문가
한국은행직무평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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