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두 음악회에 관심이 집중됐다. 마르크 에름레르의 서울시향 상임지휘자 취임연주회(11·12일 세종문화회관)와, 소프라노 홍혜경·메조소프라노 제니퍼 라모의 듀오 공연(13·15일 LG 아트센터)이다. 에름레르의 취임연주회는 지난 3년간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가 공석이었고, 그가 한번도 서울시향을 지휘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겹쳐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편 홍혜경과 제니퍼 라모의 듀오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두 스타를 한 무대에서 만나는 드문 기회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에름레르 서울시향 취임 연주회
에름레르 취임연주회의 압권은 이틀 공통 마지막곡인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이었다. 러시아 지휘자로서 러시아 음악 특히 차이코프스키에 강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이 곡에서 카리스마를 드러냈다. 몰아치지 않고 안정된 템포를 유지하면서도 정점을 향해 오케스트라 전체를 고양시키는 노련함은 대가다운 것이었다. 특히 대단한 에너지를 터뜨려야 하는 관 파트에서 그는 서울시향이 낼 수 있는 소리의 최대치를 끌어낸 느낌이다. 현 파트의 치밀하고 깨끗한 앙상블 역시 인상적이었다. 4악장 피날레로 치닫는 서울시향의 연주는 강철군단의 행진처럼 힘차고 튼튼한 것이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의 감동에 비해 다른 곡들은 다소 덤덤하거나 에름레르와 서울시향의 궁합이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느낌을 줬다. 특히 둘째날 프로코피에프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적 협주곡’에서는 지휘자·협연자·오케스트라의 템포가 서로 어긋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연자 양성원은 까다롭기 짝이 없는 이 곡을 분명한 자기 색깔로 소화하는 원숙함을 보여줬다. 반면 첫날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협연한 그라프 무르자는 이 곡의 큰 스케일과 그다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다만 그가 빚어낸 한음한음의 단단함에서 범상치않은 기량이 짐작됐을 뿐이다.
■홍혜경·제니퍼 라모 듀오 공연
홍혜경과 제니퍼 라모의 듀오 공연은 성악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호사였다. 오페라 아리아와 이중창으로 꾸민 이번 공연에서 그들은 완벽한 노래와 무대 매너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의 듀엣은 왕관에 나란히 박힌 두 개의 보석처럼 빛났다.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음색과 빈틈없는 앙상블이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들리브의 ‘라크메’ 중 ‘가자 말리카여’,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중 ‘사랑의 밤’은 꿈결처럼 황홀했다.
5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선 홍혜경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그리운 시절은 가고’를 부를 때 청중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숨막히는 아름다움, 바로 그것이었다. 이 곡의 우아한 귀부인은 레하르의 ‘주디타’ 중 ‘나의 입술에 뜨거운 키스를’에서 유혹적인 댄서로 바뀌었다. 이처럼 뛰어난 표현과 연기력은 라모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무대가 처음인 라모는 화려한 탄력의 따뜻한 목소리뿐 아니라 넘치는 끼의 소유자였다. 로시니 ‘탄크레디’의 이중창 ‘피에로 일콘트롤’이나 ‘세미라미데’ 중 ‘결국 바빌로니아에 있었네’도 훌륭했지만 관객을 가장 열광시킨 것은 앙코르곡 ‘프리마돈나가 되고 싶어’였다. 스타가 되고 싶은 꼬마의 마음을 춤추고 뛰면서 익살맞게 표현하는 라모의 솜씨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으며, 관객들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팬서비스로 이런 깜짝쇼를 준비한 그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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