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전 한 마을에서 큰 싸움이 났다. 마을 문전옥답에 외지에 살던 마을 사람의 묘지가 들어서면서 조용하던 시골이 시끌벅적해 졌다. 마을입구 밭 300여평에 일곱개의 묘가 들어서고 주변은 대리석과 조경수로 꾸며졌다. 집을 들락날락하며 이를 봐야 하는 주민들은 화가 났다.땅을 매각 한 주민은 마을에서 왕따가 됐고 옥답을 무단으로 형질을 변경한 묘주는 군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하지만 묘주는 몇십만원의 벌금을 물었고 지금 그 묘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모양을 뽐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요구는 옥답을 복원하라는 것이었지 묘주에게 벌금 따위를 물리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엇그제 묻어 놓은 시신을 파헤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 지난해 7월에는 서울의 모 시의원이 농촌주택과 가까운 곳에 대문까지 달린 400여평 규모의 조상묘를 조성, 이를 반대하는 주민과 시의원이 주먹다짐을 하고 서로를 고발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군은 그 시의원을 도시구역내 무단 형질변경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강진군의 자료에 따르면 인구가 5만2,000여명에 불과한 이 곳의 묘지는 자그마치 5만여개에 이른다. 파악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묘지수가 인구수를 앞지르고 있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요즘은 교통이 좋은 곳이 명당이라고 해서 마을의 도로변이 온통 묘지천국이 돼 버렸다.
문제는 이런 묘를 바라보는 농촌의 좌절감에 있다. 주민들은 “갈수록 사람은 줄어드는 데 묘지만 시시각각 늘고 있다”며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 문전옥답 대신 서울사람이 꾸며놓은 분묘를 봐야만 하는 게 짜증이 난다”고 말한다.“고향은 죽어서나 찾아오는 곳인 모양”이라는 주민들의 자조섞인 한탄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젊은 사람이 없어 70세가 넘어서도 농사철이면 중노동을 해야하는 사람들이 호화분묘에 묻혀 돌아온 옛 친구를 보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이 사람들이 후손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너도 얼른 커서 서울로 가거라”뿐이다.
고향이 공원묘지가 돼서는 안된다. 도시주변에도 공원묘지는 많이 있고 굳이 조상을 고향에 모시려고 하는 사람들은 고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분묘를 만들 것을 권유하고 싶다. 요즘에는 화장(火葬)을 하는 사람도 많으니 한번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고향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존심을 갖고 살 수 있는 곳이여야 한다.
/주희춘 강진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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