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의 운필로만 화력 30년째인 소평(小平) 박대성(55). 그가 5년 만에 또다른 독특한 먹의 세계를 선보인다. 18일부터 6월 11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갖는 개인전 ‘묘향에서 인왕까지’는 한국화의 위기를 절감하고 있는 이들에게 수묵담채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은다.수묵화, 수묵담채화, 문인화 등 40점의 전시작품은 모두 대담하면서도 섬세한 조형실험들로 빛나고 있다. “과거 현장에 충실했다면, 이제는 현장을 재해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소평의 말처럼 오랜 장고 끝에 내놓은 새로운 양식의 화풍이다.
단연 눈부신 그림은 ‘금강전도(金剛全圖)’ 연작이다. 120호와 150호 크기의 이 그림들은 그만의 독특한 진경의 세계를 엿볼수 있다. 부감법(내려다본 그림)으로 조망해 본 금강산은 마치 볼록렌즈로 들여다보듯 입체적이다. 검은 먹만으로 웅장하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금강산의 비경이 장중하면서도, 섬세하게 담겨져있다.
또 하나의 파격적인 작품은 ‘금강오견도(金綱吾見圖)’. 동해를 출발, 장전항에 입항해 온정리, 삼선암, 괴면암, 만물상, 삼일포, 해금강까지 금강산의 여행코스가 옆으로 11㎙에 이르는 긴 그림으로 다양하게 펼쳐진다. 금강산만 세차례나 찾았던 소평은 이 안에 진달래, 해당화, 구절초, 매화, 금강초롱 등 사계절의 꽃을 담아 춘하추동의 경계를 구분했다. 가히 금강산 화첩이라 부를만 하다.
그의 먹그림의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된 또하나의 작품은 안동의 ‘병산서’이다. 전에 볼 수 없던 파격적 구도와 과감한 생략으로 그는 화가들이 도전하기 쉽지않다는 병산의 특징을 잘 포착해냈다. “마치 강한 칼로 화강석을 새기는 기분으로 붓을 종이 위에서 움직였다”는 그의 말처럼 힘이 느껴지는 필선이다. 수묵화의 장기는 선(線)이라는 말을 실감케 해주는 필력이다. 또 하얀 여백은 현대화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 왜 우리 선인들이 채색을 마다하고 수묵을 즐겨왔는지 알 수 있는, 시원한 맛을 보여준다.
‘묘향에서 인왕까지’라는 전시회 제목처럼 작가는 묘향산 백두산 금강산 정방산 같은 북한 지역의 산 이외에도 작가가 살고 있는 북한산, 인왕산도 두루 섭렵해 화폭에 담고 있다. “백두는 영험하고 금강은 음양(음은 바다, 양은 산)이 맞물려 있으며 묘향은 기기묘묘하다. 서울의 북악은 골육(骨肉)을 제대로 갖춘 진산이다.”미술평론가 윤범모(경원대 교수)씨의 말처럼 위기의 한국화단에 먹그림의 입지를 확인시켜 주는 작업이다. 작가는 “이제야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작가로서의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송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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