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총리처럼 여론에 민감했던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불시에 각계인사들에게 인사전화 축하전화를 걸고, 민심을 파악하는 전화를 자주 걸어 당사자들을 놀라게 한다고 ‘부치폰’이란 말이 생겼을 정도다. 98년 가을 한국 언론인들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한국에서 오부치 총리의 인기가 높다”는 의례적 인사말에 “일본 언론인들에게 꼭 그말을 해달라”는 조크로 응대한 것도 인기를 의식한 생리적인 행동으로 보였다.■그가 총리에 지명됐을 때 서방언론은 ‘식은 피자’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오랜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경제 회생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고층건물 숲의 라면가게’를 자처하는 보수정치인이 무슨일을 하겠느냐는 비아냥거림이었다. “사흘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란 혹평도 따랐다. 그러나 소처럼 우직하다는 ‘둔우’, 남의 말을 잘 듣는다는 ‘진공총리’같은 별명이 생기면서 인기가 높아져 25%였던 지지도가 한 때 50%를 넘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열심히 일했다. 재직 20개월동안 그는 단 3일 밖에 쉬지 못했고, 하루 4~5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한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썼다는 말이 일정의 분주함을 잘 설명해준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4월 첫 토요일에도 공식행사 참석 3건, 시설방문 1건, 외빈접견 2건을 치른 뒤 연립정권 탈퇴를 위협하는 야당 지도자와의 회담에 2시간을 시달렸다. 그 앞날들도 오키나와 G-8행사준비, 잇단 경찰관 오직사건, 우스화산 폭발 등으로 편할 날이 없었다.
■쓰러지던 날 그는 업무중 손바닥이 저린 증세를 느끼고도 일을 강행했다. 야당총재와의 회담후 기자들과 만날 때 다리가 휘청거려 경호원에게 부축되어 공저로 돌아가 일찍 자리에 들었다. 자정이 넘어 부인이 이상을 감지했으나, 응급차를 부르지 않고 비서관 승용차로 병원에 실려가 응급처치가 늦어졌다. 일본총리의 뜻하지 않은 죽음은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분명한 메시지 하나를 던져 주었다. 집무실에서 링거주사를 맞아가며 일하는 과로는 결코 그 나라와 조직에 이로울 것이 없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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