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의 우유부단한 문화재 대책이 풍납토성 유적지의 파괴를 초래했다. 백제 초기 역사의 비밀이 숨어 있는 서울 풍납토성(사적 11호) 안쪽의 아파트 건립 예정지가 급기야 재건축 조합측에 의해 파헤쳐지고 말았다.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된 이 지역은 근래 대규모 건물터와 백제 고위 관직명인 대부(大夫)가 새겨진 토기, 기와, 제사용 말의 뼈 등 500 상자가 넘는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된 곳이다.풍납토성은 여러 차례의 발굴 결과 몽촌토성설을 대신하여 거의 확실하게 위례성 터로 추정돼 가고 있으며, 이 경우 서울의 역사도 1,40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중요한 사실(史實)의 열쇠를 쥐고 있다. 그러나 토성 자체만 사적으로 지정됐을 뿐, 안쪽은 문화재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아파트가 건축될 예정이었다. 굴착기까지 동원된 이번 유적지 훼손은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부지 보상비 부담 떠넘기기 다툼만 벌이고 있는 사이, 건설업자와 시민의 피해의식이 야만적으로 폭발한 것이다.
주민의 폭력적 집단 이기주의도 개탄스럽지만 “근본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발굴허가를 보류한다”고 만 밝히고 정작 대책 마련에는 등한시하고 미온적이었던 문화재청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서울시는 풍납토성 유적지의 중요성을 바르게 평가해야 한다. 역사를 바꿔 놓을 정도의 유적지는 자주 발굴되는 것이 아니므로 당국은 이 유적지를 사들여야 한다. 풍납토성 일대를 고도(古都)로 선포하고 영구보존하자는 학자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우선은 완전한 발굴·보존대책이 설 때까지 이 지역을 공원화해서 더 이상의 문화재 훼손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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