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게놈프로젝트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국제공동연구를 이끄는 미 국립보건원은 30억개 염기로 이뤄진 인간유전자 서열을 6월께 발표할 예정이다. 이제 조각조각 규명된 유전자서열을 완전한 지도로 꿰어맞추는 일과 동시에 각 유전자의 기능분석에 착수한다. 유전자를 조작함으로써 인간의 생로병사를 인간의 손안에 두려는 꿈은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하다. 유전자서열을 밝히는 게놈프로젝트 이후에는 어떤 연구가 이어지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점검해보자.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간의 수명과 질병을 직접 조절할 수 있으리라는 이유로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유전자를 가진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세계 각국이 이미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은 식물 즉 농작물이다. 인간게놈연구가 의약산업의 기초연구라면 이에 맞먹는 또 다른 거대한 시장이 농작물시장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벼 게놈 국제공동연구를 주도하고 있으며(최근 미국 몬산토사가 일본을 앞질러 연구성과를 공개했지만), 미국은 옥수수를 쥐고 있다. 독일은 감자, 영국은 양배추, 캐나다는 유채에 대한 게놈연구에 착수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한국적 농작물 배추 충남대 임용표(원예학과)교수는 “배추야말로 우리 실정에 맞고 독창적인 2세대 게놈연구 작물”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도 인간 외에 동·식물 게놈 중 하나라도 국가원천기술로 확보해야 한다. 다른 분야는 이미 늦었지만 한가지라도 세계에서 앞서나가야 연구성과를 맞교환할 수 있는 고지를 갖게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배추인가. 국내 생산량이 연 240만톤에 이르는 배추는 거대한 김치시장을 등에 업고 있다. 국내 김치시장만 1조원, 해외수출은 1,000만달러 규모다. 또 최근 10년간 일본의 김치시장이 2배로 늘었을 만큼 증가추세에 있다. 생산공정에 관한 기술경쟁을 넘으면 남은 것은 김치 맛을 좌우하는 배추의 품질이며 이를 유전자특허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교수는 “우장춘박사의 세계적 연구를 바탕에 깔고 있는 우리나라는 종자산업에 막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IMF를 맞으며 종자산업 분야가 취약해지고, 해외의존도가 많이 높아졌다. 이제 우리의 전통작물과 식품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유전자정보를 특허로써 확보하는 길 뿐”이라고 말했다. ‘김치’냐 ‘기무치’냐 하는 김치시장에서의 한·일 경쟁은 이제 배추의 유전자원 전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또 배추 유전자는 크기가 염기 7억개 정도로 작은 편이라 분석이 쉽다는 점도 우리에겐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염기가 30억개, 밀이 150억개, 고추가 50억개인 것에 비하면 ‘해볼 만한’ 정도라는 것이다. 식물 중 가장 먼저 게놈분석이 완료된 애기장대는 유전자가 1억개로 식물 중 가장 작았고, 벼 역시 4억4,500만개여서 일찌감치 착수된 작물이다. 배추 외에도 고추 마늘 인삼 등은 우리가 연구하기에 유리한 작물로 꼽을 수 있지만 이들은 유전자가 너무 크거나 세대가 길다는 점 등이 한계다.
신토불이 게놈연구 지원해야 임교수는 93년부터 배추게놈연구에 착수했다. 농작물의 게놈연구도 인간게놈연구와 마찬가지로 유전자 대량서열분석을 통해 게놈지도를 그린 뒤 각 유전자의 기능을 규명함으로써 산업적으로 이용하는 게 순서다. 임교수는 한국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통배추로 대량유전자분석의 준비작업을 마친 상태. 즉 거대 DNA를 포함한 유전자은행(이를 BAC library라 함)을 제작하고 염색체에서 유전자의 위치를 확인하는 물리적 지도제작을 끝냈으며 유전자서열을 분석 중이다.
임교수의 목표는 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모든 배추 유전자와 농작에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들을 발굴, 특허화하겠다는 것이다. 즉 아삭아삭하는 질감의 원인인 셀룰로스나 비타민, 당의 함량을 조절하는 유전자들, 병·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등이 발굴대상이다. 이 밖에 배추가 속한 십자화과 작물은 항암물질, 비타민, 플라보노이드 등 의약품으로 유용한 물질을 포함한다는 점도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가적 차원에서 배추게놈연구에 대한 연구지원은 없는 편이다. 임교수는 “물론 게놈연구는 예산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예산과 자원이 한정된 현실에서 중요한 유전자부터 확보해나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신토불이 게놈 연구’에 대한 계획을 검토해야 할 때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입력시간 2000/05/15 18:37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