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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의 관전노트] '말하는 초시계’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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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의 관전노트] '말하는 초시계’등장

입력
2000.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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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부터 한국기원 본선 대국실에 ‘말하는 초시계’가 등장했다. 그동안 계시원이 담당해 왔던 초읽기를 기계가 자동적으로 해주는 새로운 초시계를 공식 기전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언젠가 본란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그동안 프로기사들 사이에서는 초읽기 방식에 대해 적지 않은 불만이 있었다. 요지는 초읽는 사람에 따라 계시 간격이 들쭉날쭉하다는 것. 특히 계시원이 현역 연구생일 경우 하늘 같은 대선배 기사님들에게 차마 야박하게 대할 수 없어서인지 정확하게 초를 읽지 못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세는 것이 10초가 아니라 30초를 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일부 기사들은 대국자와 계시원의 친소관계에 따라 초읽는 속도가 다르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따라서 프로 기사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초읽기를 기계화하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막상 국산 계시기가 없어서 흐지부지 되었다가 최근 말하는 계시기가 국내에서 개발, 실용화된 것이다. 요즘 공식 대국에서 새로운 초시계를 사용해본 프로기사들은 그동안 일부 비공식 대국에서 사용되어 왔던 일본이나 대만제에 비해 기능면에서 전혀 손색이 없고 특히 한국어로 초를 읽기 때문에 훨씬 좋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특히 이 말하는 계시기는 한 아마추어 애기가가 사재를 털어서 만든 ‘작품’이라는데 더욱 의의가 있다. 바둑계의 마당발로 유명한 강준열씨(분당 중앙바둑교실 원장)가 서울 시립대 이주환 교수팀과 함께 벤처 기업을 창업, 1년여의 연구 끝에 제품 개발에 성공한 것. 개발자 강씨는 “우리나라가 세계 제일의 바둑 강국을 자처하면서도 국산 계시기 하나 없이 일본이나 대만제를 수입해다 쓰는 현실이 안타까워 일을 벌였다”면서 “애초부터 돈을 벌자고 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본전이라도 회수하려면 최소한 1차 생산품 3,000개 정도는 팔아야 하는데 잘될지 의문”이라며 웃었다.

‘신선 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바둑을 두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법이지만 모두가 바삐 돌아 가는 현대 사회에서 마냥 바둑판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럴 때 시간도 절약할 겸 초시계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실 프로만 초시계 사용하란 법이 있나.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새까만 하수들도 으레 대국시에 초시계를 사용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아마추어 동호인들도 점잖게 초시계 옆에 놓고 고수 기분을 느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바둑평론가 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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