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군 시련딛고 타격·수비·주루 절정“삶은 아름답다.”
최근 화제를 불러모은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설경구 분)가 형사시절 잔인하게 고문했던 수배자친구와 조우하면서 던진 말이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주인공의 삶에 대한 강한 부정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주인공 영호처럼 고뇌에 찬 삶도 아니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이종범(30·주니치 드래곤즈). 그 역시 얼마전까지만 해도 “지금도 너는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니”라고 수배자친구에게 묻는 영호의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였을 법하다.
1998년 희망에 부풀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지 3년째. 올 시즌들어 그는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1군엔트리에서 제외됐을 때 충격은 믿기지 않을 만큼 컸다.
아마는 물론 프로에서도 ‘야구천재’라는 수식어조차 모자랐을 정도로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한국의 이치로’라는 칭찬을 무색케 하며 자존심이 뭉개졌다. 삶의 터전이자 전부인 야구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그런 이종범이 이제는 날고 있다. 타격은 물론 주루, 수비에서도 거칠 게 없다. 15일 현재 3할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규정타석을 채웠다면 센트럴리그 10위권이다.
12, 13일 히로시마 카프전에서는 잇따라 홈런포를 터뜨렸고 14일 히로시마전서는 거푸 2, 3루를 훔쳐 결승점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내에서 최고의 유격수라는 칭찬을 받았던 수비도 이제는 궤도에 올랐다. 유격수가 아닌 좌익수로 옮긴 이종범의 수비는 이제 누가 뭐래도 최고다.
몇달새 이렇게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감이다. “자신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지난해만 해도 잦은 타순과 수비위치 변경으로 인한 스트레이스때문에 원형탈모증까지 생겼다.
하지만 2군에서 쓴맛을 본후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심정으로 평상심을 되찾은 게 큰 힘이다. 또 수비에서 안정을 되찾은 것도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지난해 외야수로 전업한후 허둥지둥 하던 모습과는 천양지차다.
잇따른 호수비로 성미급한 호시노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출전이 두렵기만 하던 지난해와는 분명 다르다.
이종범하면 타격이다. 일본에 진출했을때 코치들은 절대 3할타자는 아니고 2할8푼대 타자로 평가절하했다. 한국에서 3할9푼3리까지 쳤던 타자를 여지없이 깎아내렸다.
웨이트트레이닝을 등한시하던 이종범은 2군행이 확정된 직후부터 경기가 끝난후에는 1시간이상 웨이트트레이닝을 해왔다. 근력이 좋아져 지난해보다 40-50g 무거운 900g짜리 방망이를 쓰고 있다.
파워가 넘치고 배트스피드도 훨씬 좋아졌다. 여기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최대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변화구공략에도 감각이 생겼다. 이제는 이종범이 야구가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정연석기자
ys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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