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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은 여성숭배의 性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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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은 여성숭배의 性담론

입력
2000.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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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性소병(蕭兵) 지음, 노승현 옮김, 문학동네 발행

김용옥 교수는 1985년 봄 고려대에서 ‘도를 도라 말하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로 시작하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을 텍스트로 흥미진진한 강의를 펼쳤다.

당시 김교수가 수강생들에게 유난히 강조한 것은 ‘허(虛)’라는 개념이었지만, 제6장에 나오는 ‘곡신(谷神)’과 ‘현빈(玄牝)’을 여성의 생식기로 풀이하고 나아가 남녀의 섹스 문제까지 거론함으로써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노자와 성(性)의 함수관계’는 ‘노자와 21세기’를 주제로 지난 해 11월 22일부터 올해 2월 24일까지 방송된 ‘EBS 노자 특강’에서도 다양하게 변주됐다.

중국 화중사범대 중문과 교수인 소병이 쓴 ‘노자와 성’은 바로 이 ‘노자와 성의 함수관계’에 대한 고집스런 학문적 천착의 결과이다. 김교수가 노자의 ‘도’ 사상 이면에 암호처럼 숨어있는 이 성적 비밀을 과감한 직관과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풀이했다면, 소병은 동서양의 수많은 학자의 주장과 신화, 민담에서 그 근거를 구한 뒤 조심스럽게 자신의 견해를 붙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소병이 500여 쪽에 달하는 이 책을 통해 주장한 것은 “노자는 원시사회에서부터 내려 온 ‘생식기 숭배’와 ‘모성 숭배’ 사상을 추상적으로 그리고 기호학적으로 대변한 것이며, ‘도덕경’은 ‘암컷’을 그리워하고 존경하는 여성철학”이라는 것이다.

소병은 먼저 ‘도덕경’ 제6장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논지를 연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노자의 생식(生殖)숭배, 여성숭배 사상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구절이다. ‘계곡의 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검은 암컷(玄牝)이라 한다. 검은 암컷의 문을 하늘과 땅의 뿌리라 한다. 이어지고 또 이어져 영원히 존재하니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다’.

여기서 계곡의 신은 여성의 음부를 상징하며 특히 물이 있는 계곡은 항상 여성이나 그 성 기관을 대표한다. 검은 암컷의 문 역시 생식의 구멍(여성의 음부)을 가리킨다.

‘현(玄)’은 두 개의 알이 끈으로 연결된 모양을, ‘빈(牝)’은 애초 ‘비(匕)’였으며 이는 여자의 생식기관을 각각 형상화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호주의 토착민이 토템 숭배의 대상을 항상 움푹 들어간 동굴 같은 곳에 설치하거나, 티베트 불교에서 바위의 찢어진 틈을 자궁으로 여겨 그곳에서 갖가지 의식을 치르는 것도 고대 사람들의 생식기 숭배와 번식력 신앙의 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소병은 그러나 이러한 노자의 사상을 방중술(房中術)의 이론적 근거로 삼으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한다. “‘검은 암컷에서 정(精)을 취한다’는 것은 여성의 생식기에서 ‘정기’를 취한다는 말이다.

즉 여자와 잠자리를 많이 하는 사람은 기를 채취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는 ‘그릇된 주장으로 여성을 놀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도덕경’에 대한 도교 작자들의 상세한 해석과 응용이 오히려 ‘창조적 배반’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노자는 오로지 ‘성’만을 이야기했는가? 소병은 이 책을 통해 5,000여 자의 ‘도덕경’이 원시적인 ‘성’담론으로만 채워져 있음을 주장한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저자가 강조한 것은 ‘도덕경’의 생식기 숭배, 여성 숭배 이면에 깔린 ‘물’에 대한 숭배 사상을 찾아내 이를 통해 ‘도(道)’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데 있다. 제4장에서 언급한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다(用之不勤)’는 구절이 소병 주장의 근거이자 출발점이다.

소병은 노자가 비록 오랫동안 북쪽(주나라)에서 벼슬을 했지만 그의 고향은 고현(苦縣·지금의 하남성)으로 원시적인 남방 민속에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따라서 강을 근원으로 삼아, 물이 모자라고 가뭄이 드는 것에 대해 초조함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농경민족의 정신세계를 대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다’는 구절은 물에 대한 농경민족의 바램과 사랑, 영원히 불멸하는 생명력과 생식력에 대한 숭배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이러한 숭배 대상으로서의 ‘물’을 ‘도(道)’로 승화했다. ‘도는 비어 있음으로 가득하니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구나’(제4장), ‘크게 찬 것은 비어 있는 듯 보이는데 이는 그 쓰임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제45장).

이는 노자 후대인 춘추시대에 자서(子胥)가 “차면 반드시 이그러지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라고 말한 것과 상통한다. 이는 나아가 농경문화에서 말하는 중도(中道)의 철학이자,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중용(中庸)의 도’이기도 하다. 결국 노자는 성을 이야기하고 들춰냄으로써 그 이면에 도사린 ‘도’를 이야기하려 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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