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감청 실태에 관한 감사원 특감결과는 우리 국가기관들에 ‘불법감청은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함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 수사기관은 여전히 탈법과 편법 감청을 자행하고, 정보통신부는 이를 돕고 있으며, 법원마저 거의 제동을 걸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런 현실이 말썽나 특별감사에 나선 감사원은 검찰과 국가정보원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이러고서 무슨 수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불법감청을 없애겠다는 것인지, 한심할 따름이다.지난해 가을 법무부와 행정자치부·정통부·국정원은 “불법감청은 결단코 없고, 어떤 경우에도 불법으로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대국민 광고를 냈다. 불법감청 논란으로 여론이 들끓던 때였다. 감사원 특감결과는 결국 이 광고부터가 거짓이었음을 드러냈다. 경찰등 ‘만만한’기관에 국한된 듯한 감사에서도 갖가지 불법과 탈법 사례가 드러났다.
관인을 몰래 찍어 통화내역 조회를 하고, 대상자를 마음대로 끼워넣고, 감청 허가기간과 법정기간을 초과하는 등, 한마디로 제멋대로다. 통신비밀 보호를 책임진 정통부도 휴대전화 사서함 비밀번호를 수사기관에 그냥 내주었다. 또 검찰은 경찰의 위법한 감청신청을 그대로 법원에 넘기고 법원은 이를 허가했다니, 도대체 그런 규제절차 자체가 무슨 소용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검찰의 위법사례를 한 건도 적발하지 못한 감사결과도 곧이 믿기 어렵다. 아예 감사를 거부한 국정원의 경우는 말할 나위가 없다. 여론과 국회가 떠들어 특감에 나선 감사원이 이런 정도 결과를 내놓는데 그친다면, 국민은 어디를 향해 사생활의 비밀을 지켜줄 것을 요구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보통신 혁명에 따라 민주주의 선진국들도 국가의 사회감시 기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논란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과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통신감청을 하는 수사기관뿐 아니라, 감사원과 법원 등 모든 국가기관이 불법감청에 대한 인식과 관행을 근본부터 바꾸는 것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국가기관의 불법감청이 개인의 도청보다 무거운 범죄라는 인식이다. 통신비밀을 보장받을 국민의 권리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헌법적 기본권이다. 따라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호할 책임을 지고 있는 국가기관이 오히려 이를 침해하는 것은 개인의 침해행위보다 훨씬 중대한 범죄다. 개인의 폭행범죄보다 수사기관 공무원의 독직폭행이 더 중한 범죄인 것과 같은 이치로 봐야 할 것이다.
허술한 감사원 특감결과는 불법감청등 통신비밀 보호문제에 관한 국가차원의 논의와 종합적 대책 마련이 시급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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