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총선에서 사용했던 선거비용 신고 마감을 하루 앞둔 12일 여야 당선자들은 선관위에 제출해야 하는 선거비용 수입·지출보고서, 예금계좌거래 내역서 등 관련서류를 준비하느라 ‘총선후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냈다.특히 선거전에 처음으로 뛰어들어 당선에만 신경을 쓰느라 관련 기록들을 미리 챙겨놓지 않았던 초선들은 대부분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서류를 뒤늦게 작성하면서 쩔쩔매는 분위기.
초선인 한나라당 A당선자측은 “보름간 밤을 새우다시피 했는데도 서류준비가 끝나지 않았다”면서 “일단 준비된 것만 1차로 신고하고 나머지는 추가신고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B당선자측도 “선거비용 산정기준이 뚜렷하지 않은데다 정당비용까지 함께 신고해야 하므로 준비할 서류가 너무 많아 선관위에 하루에 한번꼴로 문의를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이 제일 골머리를 썩고 있는 부분은 선거법상 선거비용은 모두 은행계좌를 통해 지출되어야 하는 규정. 은행계좌에서 빠져나가지 않은 선거 비용은 아예 감추거나 해명해야 하기 때문에 사후처리에 애를 먹을 수 밖에 없다.
또 선관위가 엄정한 실사를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도 야당 당선자들은 “괜한 꼬투리나 잡히지 않을까”노심초사하는 분위기. 한나라당 C당선자측은 “공인회계사까지 동원,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일부 당선자들은 아예 가급적 늦게 신고하려는듯 ‘눈치작전’까지 벌이고 있다는 후문. 한나라당 D당선자측은 “미리 제출하면 실사할 시간만 더 주게 돼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재선이나 3선 당선자들은 그동안 경험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도 있는데다 선거기간 중에도 미리미리 준비를 해놓은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느긋한 분위기.
4선인 한나라당 E당선자측은 “선거기간 중에도 서류를 계속 준비한데다 선거기간중 사용한 비용도 1억원이 채 되지 않아 이미 지난주 관련서류를 모두 제출했다”고 말했다. 3선인 민주당 P의원측도 “선거비용 문제 만큼은 선거운동 전에 이미 수차례 다짐을 한데다 우리 당 ‘텃밭’지역이라 대세가 이미 굳어져 돈을 많이 쓸 필요도 없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박천호기자toto@hk.co.kr
■선관위 실사 어떻게...
4·13 총선 출마자들의 선거비용 보고서 제출이 마감되는 13일부터 선관위가 본격적인 비용실사 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것은 최종확인에 해당하며 이미 웬만한 기초자료는 확보한 상태.
선관위는 선거운동 기간서부터 지금까지 선거기획사나 인쇄소, 선거장비 임대업체, 음식점 등을 방문, 후보자들이 이들 업체에 실제로 지불한 비용 규모를 파악하는데 주력해 왔다.
회계보고서 제출후 일주일간의 서면심사기간에는 자체 파악한 비용 규모와 보고서 수치와의 대조작업을 거치게 되는데 눈에 띄게 액수가 차이나는 경우 집중실사 대상 리스트에 오를 가능성이 100%.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12일 “비용실사는 공명선거관리의 최종 마무리단계”라며 “당선으로 선거가 끝났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라고 각오를 보였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용실사후 기소까지 가능하려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기 때문. 선거종료와 동시에 선거사무소가 패쇄되고 장부를 폐기하는 경우가 많아 막상 실사에 들어가면 ‘뒷북’을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선관위는 지난 선거법 개정에서 선거운동기간중 비용실사가 관철되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쉬워 하고 있다. 당시 선관위는 “선거기간중 선거사무소에 출입, 장부를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했지만 여야 의원들은 “선관위 직원이 들락거리면 신경이 쓰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묵살했다.
선관위 실무 담당자는 “선거기획사 등 선거관련 업체를 방문, 실제 비용을 물어보는 방법이 주로 이용되는데 후보자와 공생관계에 있는 이들이 솔직하게 말해줄 지 의문”이라며 “제대로 된 비용실사가 되려면 선거에 들어가기 전부터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보 부족도 애로사항중 하나. 선거운동 기간에는 “당선을 무효로 만들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큰소리치던 상대 후보도 막상 선관위측에서 협조를 요청하면 꼬리를 내린다는 것.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가 끝난 마당에 상대방을 공격하면 지역민심만 잃는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라며 “좋은게 좋다는 식의 정치의식이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선관위는 지금까지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한 221건을 포함해 비용실사 과정에서 적발된 사안에 대해 검찰이 기소하지 않을 경우 이번에 처음 도입된 재정신청권을 적극 활용, 당선무효와 피선거권 제한 등 반드시 상응하는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노원명기자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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