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말코비치 되기카메론 디아즈, 존 쿠삭, 예쁘고 잘 생긴 도시풍의 연기자 둘이 망가졌다. 존 쿠삭의 너저분한 머리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카메론 디아즈는 ‘그녀를 닮은 여배우’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미모가 처져 보인다. 안심하고 망가질 만큼 탄탄한 작품 ‘존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
세상에 자신의 예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실업자 신세로 지내는 인형제작 자 크레이그 슈바르츠(존 쿠삭). 애완 동물점 점원인 아내 라티(카메론 디아즈)는 침팬지나 강아지 따위에 온통 신경이 팔려 있다. 가정이란 허울일 뿐.
그가 7과 ½층에 위치한 레스터사에 입사하면서 ‘기괴한’ 경험이 시작된다. 건물주가 난쟁이 애인을 위해 만든 이 빌딩은 정상인은 고개를 꺾어야만 겨우 걸어 다닐 수 있고, 멀쩡한 사장은 자기가 ‘언어장애’가 있다고 울먹인다. 정상이 비정상인 공간. 초반의 언어적 유희는 크레이그가 이상한 통로를 발견하면서 도 다른 국면으로 진입한다. 통로는 질(膣)의 은유이다. 이 길로 들어서면 배우 말코비치(존 말코비치)의 의식 속에 15분간 머물게 된다. 관계는 이 때부터 꼬인다. 라티는 남편이 짝사랑하는 맥신(캐서린 키너)의 의식에 지배 당하는 말코비치를 사랑하게 되고, 크레이그는 말코비치의 의식 속에서 그를 인형처럼 조종하면서 맥신과 정사를 나눈다.
전통적 ‘남성과 여성’의 성 구분은 해체되고, 관계는 세기말적 징후처럼 혼란스럽다. 여기에 말코비치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영생을 꿈꾸는 집단까지. 통로는 의식과 무의식의 혼음(混淫), 성 정체성의 혼란, 윤회와 영생 등 수많은 화두를 던진다. 기발하고 독특한 시나리오, B급 영화의 인기배우 캐서린 키너와 주연 남녀 배우의 연기력, 유쾌하면서도 기괴한 연출까지 ‘독창성’의 전범을 보여주는 영화로 컬트 영화팬이라면 빠뜨리지 말아야 할 영화. ‘뮤직비디오 감독 스파이크 존스의 데뷔작이며, 시나리오는 신예 찰리 카우프만. 13일 개봉. 오락성★★★☆ 작품성★★★★
■하나의 선택
인생은 선택이다. 우리가 운명적이라고 말하는 것마저도, 결국은 자기 몫이다. 남편이 군사정권에 의해 투옥되자 로마로 건너온 아프리카 여인 산두레이(텐니 뉴튼)는 낮에는 가정부로, 밤에는 의대생으로 고단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고대하던 남편이 석방돼 돌아오는 날, 그녀는 피아노까지 팔아 남편의 석방을 도운 영국인 음악가 킨스키(데이비드 툴리스)에게 몸을 허락한다. 현명한 선택이든 아니든 그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이 서양에 대한 우월감이나, 아프리카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 또 다른 이국적 센티멘탈리즘이라면 아름다움보다는 씁쓸함이 더 클 것이다.
‘하나의 선택 (Besieged)’은 이런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감독이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거쳐 오리엔탈리즘에 빠졌던 이탈리아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는 아시아가 아닌 아프리카인가. 여인의 마지막 선택은 백인에 대한 존경인가 아니면 서구사회에로의 귀속 욕구인가.
감독은 이런 비판을 피하기 위해 갖가지 장치들을 했다. 남자 주인공에게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부여했고, 반대로 여자는 서구 사회 속에서 당당하게 인정 받아가는 존재로 발전시켰고, 서구문화의 우월적 표현들을 배제했다. 빼어난 시각효과와 깊이있고 섬세한 감정의 은유로 남녀의 관계를 깊이있게 성찰한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대륙의 도시풍경, 토속음악과 우아하고 현란한 피아노 반주에 실린 서양고전음악, 비극이란 설명 속에 담긴 서구와 아프리카의 (식민지적) 관계들이 ‘하나의 선택’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이런 억울함과 오해 역시 감독의 숙명적 선택일 수 있다. 13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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