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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문화탐험](10.끝) 에게해, 신들과 인간들의 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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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문화탐험](10.끝) 에게해, 신들과 인간들의 활극

입력
2000.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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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105세까지 살았다. 소포클레스는 90세에 ‘코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썼다. 이들만이 아니다. 그리스 철인들은 거의 장수했다. 옛 그리스 시민들은 허름한 식생활로도 그들의 잦은 옥외생활과 함께 생명력이 강했다.지금도 산악지대 노새 마부는 빵 한 조각과 올리브 열매 몇 개로 4, 5일이나 척박한 산길을 끄떡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산세도 기후도 극적일만큼 변덕스럽다. 제우스 신은 걸핏하면 노기를 띠어 번개칼을 던지고 해신(海神) 포세이돈도 바다 전체와 대지를 진동시키는 폭풍과 지진을 마구 부리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생명 의지는 끈질기지 않을 수 없다. 시인 헤시오도스가 노래한 8종(種)의 바람도 그들을 단련시키기에 충분했다.

지금 그리스 땅 5분의 4가 불모지이다. 그때는 그렇지 않았지만 인구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렇게 된 것이다. 내가 델포이 신전으로 가는 오르막길 페르나소스산 일대가 오랜만에 진한 녹색이었다.

하지만 많은 곳이 황량한 석회석의 산등성이고 바위와 자갈 투성이다.

이런 산세와 대조되는 벽옥의 바다야말로 훨씬 더 그리스적이다. 육지는 지진이 잦았고 바다에는 폭풍이 심했다. 그런 곳이 그리스 사람들의 벅찬 생존공간이었다.

그리스는 본토와 반도 그리고 섬들을 숨가쁘게 망라한다.

그러나 진짜 그리스는 그런 지상이 아니라 지중해 전체가 그리스인 것이다.

에게해! 그 바다의 물빛은 독극물을 쏟아부은 것처럼 지독하게 푸르렀다. 나는 몇 해 전 카다피 초청으로 리비아에 가는 길의 튀니지 앞바다에 경탄했다. 그 바다 빛깔을 튀니지 블루라 한다. 에게해야말로 에게 블루이고, 이오니아 블루의 물빛이 아닐 수 없다.

이 절대음악과도 같은 바다가 수기(數奇)란 표제음악으로서의 그리스 문명과 삶의 광장이고 그들의 정신이 행사되는 영토인 것이다.

아테네왕 아이게누스는 용감한 아들 테세우스를 크레타에 보내면서 승리했을 때에는 흰 돛을, 패배했을 때는 검은 돛을 올리기로 했다.

테세우스는 크레타에 건너가 이기고 돌아오며 흰 돛을 올린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부왕은 그의 대를 이을 아들이 죽었다고 오판하고 수니온 곶 절벽에서 투신자살했다.

사람들이 그 바다를 아이게우스 바다라고 불렀다. 그것이 에게해이다.

그런 사연의 바다는 신화세계가 종횡으로 펼쳐지는 자유분방한 신들의 마당이다. 제우스의 한 아들은 이집트 나일강신(江神)의 딸 멤피스와 결혼해서 손녀 에우로페를 두게 된다. 그리스 신의 국제결혼이었다.

그런데 몇 대 뒤의 할아버지인 제우스가 또한 그녀와 정사를 마다하지 않고 자신과 통한 그녀를 크레타 왕에게 시집 보낸다. 시간과 공간의 어느 부분도 서슴지 않고 신의 무대로 사용되고 있다.

여러 남신과 남자를 거친 그녀는 죽어서 여신이 된다. 그녀 이름 에우로페를 서쪽 대륙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해서 오늘의 ‘유럽’이 되었다.

하지만 에우로페는 아시아와 함께 대양(大洋)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아시아라는 처녀신의 이름과 에우로페(유럽)라는 처녀신의 이름으로 오늘의 동양과 서양을 갈라 놓았다.

그런 동과 서의 광대한 지역들이 만나는 곳이 에게해이고 본토의 폐쇄적인 자기방어와는 달리 이오니아의 국제적 개방으로 활개치는 해양문화의 현장이 바로 그 바다였다.

나는 포세이돈 신전의 폐허가 있는 수니온 곶에 갔다. 바닷바람은 가죽이 펄럭이는 것 같았다. 세차게 사람들을 날려서 저만치 미친 파도 위에 나가떨어지기 십상이었다. 바로 이 곳이 아테네의 젊은 영웅 테세우스의 부왕이 절망 끝에 몸을 던진 곳이다. 그 곳에 영국 시인 바이런의 자취가 있다.

과연 18세기 낭만주의는 산악이나 어떤 육지보다 바다가 그 격정적 드라마와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를테면 이전의 고전주의와 이후의 자연주의, 사실주의 어디에도 바다가 집중적으로 소재와 주제가 된 적이 거의 없다.

시뿐만이 아니다. 문명 혹은 문화에서도 바다는 최고의 무대이고 시장이었다. 문명이란 단호하게 말하자면 90%의 모방과 10%의 독창으로 된 것이다. 문화란 다른 문화와의 혼교 없이 성립되는 일이란 이 세상에 없다.

문화의 고유성, 정통성의 강조는 그 이면의 어느 골짜기에 약자의 비애를 뒷받침하는지 모른다.

오늘의 다문화 및 다국적 문명의 공존이라는 뜨거운 현실은 고전기(古典期) 그리스의 바다에서 이미 충분한 실험을 거친 재현이기도 하다.

그리스는 이집트에서 배웠고 바빌로니아에서 배워서 그들의 헬레니즘을 완성했다. 유대 유일신론은 이집트 신왕조의 한 반범신론(反汎神論)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스 철학이 쇠락하고 그리스 신들이 타락했을 때 신탁에서 기복신앙이 판치게 되는데 그들은 바빌로니아 점성술을 그들의 운명의 신과 함께 길흉화복의 도구로 삼았거니와 그것이 남의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만큼 바다는 바다 건너 미지의 것을 마음껏 받아들여 자신의 가치로 삼았다. 처음부터 그들은 개항(開港)의 역사를 개막했고 기원전 1,500년부터 기원후 2,000년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바다 위의 실존적 자기를 실현해온 것이다.

바다 위의 수평선이야말로 모든 한계와 벽과 타인을 커다란 자아의 무한과 자유 그리고 자기확대로 변화시키는 힘의 이정표였다.

그래서 그리스 전성기의 식민도시는 지중해 연안에 가로등처럼 불을 밝힐 정도로 널려 있었다.

그리스 땅만으로 살 수 없었다. 국토의 80% 정도가 산악지대이다. 그래서 해적과 풍랑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섬과 섬 사이의 교역과 원양항로에 목숨을 바쳤던 것이다.

플라톤은 시인을 혐오했으나 그의 체질은 시인적이다. 그의 20년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증적 현실주의자이지만 플라톤은 이상주의자였다.

그의 시적인 비유가 있다. 에게해를 연못에 견주고 그 연못 둘레의 개구리들을 그리스인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 비유는 너무 들어맞는다. 그리스인들은 멀리 흑해 저쪽까지 가야했고 남으로 에티오피아 내륙까지 갔다.

오늘의 지브롤터에는 그들의 식민도시가 세워졌다.

바다에는 하나의 민족이 없다. 여러 민족과 여러 지역의 관계로서의 공동체를 그들의 거대문명의 물질적 기반으로 삼는다. 바다는 웅장한 시 세계이자 엄중하고 혹독한 현실세계를 겸하고 있는 인간종합의 극장이었다.

아마도 그리스에는 산비탈에만 신전과 극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에게해, 지중해 전체의 파도 위에 그것들은 산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대지의 배꼽’, ‘세계의 중심’으로 자부하는 델포이 신전의 아폴론이나 그의 아버지 제우스를 섬기는 올림피아 신전 그리고 포세이돈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 등 수많은 신들을 받드는 신전들이 끊임없이 세워졌고 신탁과 제례 그리고 신에게 바치는 운동경기가 이어진 것이다.

바다라고 제쳐두지 않았다. 해신 포세이돈을 비롯해서 1급신, 하급신을 구분하지 않고 심지어는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까지도 지중해 여기저기에서 제사 지내는 대상이었다. 아니 기독교의 마리아 신앙 역시 이런 바다 위의 여신숭배의 막대한 영향을 받아 가능했던 것이다.

호메로스의 2대 서사시 ‘일리어드’의 주제는 현실에의 복귀이다. 트로이 전쟁의 승리는 전후의 지배의지와 직결된다. 그런데 ‘오딧세이아’는 주인공 오딧세우스의 파란만장한 방황과 시련이 지중해 서쪽까지 그 역경의 무대를 떠돌게 했다.

일리어드와 달리 현실에 적응할 수 없는 기나긴 유리(遊離)를 주제로 삼은 것이다.

델포이는 그리스의 긍지이다. 사람이 다가갈 수 없는 올림포스산은 오직 신만의 세계이다. 그런데 델포이는 얼마든지 신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산이다.

페르나소스산 역시 험준했다. 이 곳 신전에서 오이디푸스의 부왕 살해와 모후와의 결혼이라는 비극적인 신탁이 나온 것이다.

이제 아무런 영험도 없고 그 영험을 받아낼 여무(女巫)도 없다. 하지만 고대 자연종교의 하나인 그리스 신화세계가 다시 한 번 도래하기를 바라는 폐허의 기둥과 돌덩어리 속에 잠겨 있는 비원(悲願)을 보았노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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