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 성곽 밖에 있던 올리브 숲, 아카데메이아(academeia)에서 유래된 말로, 플라톤이 철학을 가르쳤던 곳이다. 젊은 현자들이 문학, 예술, 자연과학 등을 한 데 모아 세상의 궁극적 이치를 논했던 곳. 그가 꿈꾸는 철학이 이런 건지 모르겠다.철학자 이정우(李正雨·41). 이제 교수가 아니다. 1998년 서강대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지난달 초 서울 인사동에 일반 시민 대상의 ‘철학아카데미’를 열었다. 5개의 현대철학 강좌를 열고 있는 이 곳이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때문인지 60여명 정도가 수강하고 있다. 대부분은 대학원생들. 라이프니츠, 메를로 퐁티, 푸코, 들뢰즈 등 주로 프랑스 중심의 다소 전문적인 현대철학을 강의하지만 현대인과 소외된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이원장은 말한다.
“인문학의 위기란 근대 이후 확립된 제도권 학문이 종국에 왔다는 것을 말한다”고 단언하는 그는 “칸막이 쳐진 채 박제화한 학문을 뛰어넘는 살아있는 사유로 동시대를 조망하려는 젊은이의 공동체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근 그는 ‘시뮬라크르의 시대’ ‘삶, 죽음, 운명’ ‘접힘과 펼쳐짐’ 등 강의록 형식의 철학서를 잇따라 펴냈다. 이 책들은 ‘살아있는 사유의 책’이다. 알기 쉽고 간결하다는 장점뿐만 아니라 저자의 사고 흐름을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독자를 생생한 사유의 장으로 이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철학자가 국내에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다.
그가 인도하는 곳은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와 동양의 선불교, 노장 사상이다. 그는 풋내기 포스트 모더니스트가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를 분간조차 못한 시대에 그는 프랑스 사상의 몰이해를 질타하며 탈근대 논의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켰다.
그가 발판으로 삼은 프랑스 들뢰즈 철학의 매력은 무엇일까.
동북아 사유를 공부하려다 기성 교수의 벽(왜 자기 밥그릇을 침범하냐는 것)에 부딪혀 교수직을 사임했을 때, 그는 제도권 철학의 국외자가 됐다. 하지만 이것이 그동안 자신이 갈구해왔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어떤 틀에 갇히는 것, 돈과 권력의 자기장에 빨려들어가는 것…. 이런 것에 저항하며 젊은이로 살아가는 것’. 들뢰즈 철학의 매력 역시 그 ‘가로지르기’다. 철학, 문학, 예술, 자연과학의 틀을 가로지르는 것도 역시. 때문에 ‘그리스적’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분화는 되돌이킬 수 없는 운명 아닌가라는 의심.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가는 사람이 있다”고 그는 답한다.
앞으로 기학(氣學)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한국을 본격적으로 조망해나갈 계획이다. 그동안의 철학적 고투는 긴 우회로였다. 그 긴 우회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인터뷰가 끝나갈 때 그는 “80년대적 문제의식을 요즘 사람들이 많이 잃어버린 것 같다. 80년대 젊은이의 모습을 발전적으로 되찾았으면 한다”고 했다. 다름아닌 80년대였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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