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화 폭락으로 아시아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태국이 3년만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졸업한다.다음달중 공식 졸업장을 받을 예정이지만 ‘빛나는 졸업장’이 아닌 ‘미완의 졸업장’이 될 전망이다.
외형상 경제지표는 좋다. 1999년 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4%였고 올해 전망치는 5.2%다. IMF로부터 받기로 했던 긴급 구제금융액중 29억달러를 아직 받지 않고 있다. 바닥이 났던 외환보유고도 321억달러로 양호하다.
그러나 1997년 8월 172억 달러의 긴급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미셸 캉드쉬 당시 IMF 총재가 “태국이 IMF 관리체제를 수석 졸업할 것”이라고 격려했던 만큼 경제의 속내가 튼튼해지지는 않았다.
IMF는 9일 간행한 제9차 태국경제보고서에서 “정부의 건전한 경제운용이 태국 경제를 회복의 길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스탠리 피셔 IMF 수석부총재는 “태국 경제의 회복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또“올해 성장률이 4%를 넘을 것이고 수출도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며 “국제수지가 안정됐고 인플레도 충분히 통제하고 있다”고 후한 점수를 주었다. 졸업성적표격인 보고서는 핵심인 금융부문에 대해서도 “은행들로 하여금 악성부채를 정부 지원없이 해결토록 한 태국 정부의 결정이 비록 느리지만 성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IMF 보고서의 문맥에 태국 경제의 침체 탈출을 가로막고 다시 위기를 부를 수도 있는 요소들이 많이 발견된다고 우려한다. 메릴 린치 방콕지사의 책임경제학자 수파붓 사이초아는 “IMF 보고서의 어조는 대단히 긍정적이지만 행간에는 경고의 보따리가 숨겨져 있다”고 분석했다. IMF가 금융부문의 구조조정과 투명성 제고 노력을 높이 평가하기는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토를 달았기 때문이다.
2월 현재 태국 금융기관의 대출 가운데 38%는 불량채권이다. 여전히 신규대출은 꺼리고 있다. 문제성 대출이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기업의 자금줄이 말라 붙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경제 전체의 회복이 물거품이 될 것이 뻔하다.
지난해부터 전자, 자동차 등의 수출신용장 내도액 증가에 힘입어 산업생산이 늘고 대외수지가 간신히 회복되는 중이다. 그러나 이런 회복세는 외국의 소비증가 덕분이지 태국의 내수진작에 의한 것이 아니다. 언제든 불황이 다시 올 수 있다는 얘기다.
IMF는 부가세 인하와 정부지출 확대 등의 경기진작용 재정정책들이 경기회복에 보탬이 됐고 이같은 정책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수가 올해말까지도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경우 정부 부채가 관리불능 상태에 빠지고 다시 세금을 인상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도 있다는 지적을 IMF는 빼놓지 않았다.
태국은 이미 공공부채가 GDP의 40%를 넘었다. 금융부문 구조조정에 추가비용이 들어갈 경우 공공부채가 남미 수준인 60%를 넘어설 수도 있다.
/신윤석기자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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