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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창호' 꿈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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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창호' 꿈나무들…

입력
2000.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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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 2층 대회장. 이제 막 코흘리개를 벗어난듯한 아이들이 저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대국에 몰두하고 있다. 대입 고사장을 방불케하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15세 이하의 바둑 꿈나무들에게만 참가자격이 주어지는 ‘한국기원 연구생 대기자 선발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전국 각지의 내로라하는 바둑수재들. 110명에 이르는 어린 ‘고수’들은 이틀동안 스위스리그 방식으로 한 사람당 6∼7판의 피말리는 대국을 치러낸 뒤 성적에 따라 연구생 입문 여부가 판가름나게 된다. 수험생으로 치면 대입 수능고사와도 같은 소중한 기회인 셈이다.‘세계 최강’ 한국바둑의 바통을 이어받으려는 프로기사 지망생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연구생에 입문하려는 바둑 꿈나무들에게 프로로 향하는 길은 너무 멀고도 험난하다. 분기마다 한번씩 열리는 선발대회를 통해 ‘바둑사관생도’인 연구생에 입문하는 경우는 대회당 4∼5명이 고작. 전체 참가자의 5%도 안되는 ‘바늘구멍’이다. 그리고 일단 연구생에 입문한 뒤 프로가 되려면 다시 또 첩첩산중의 험로를 걸어야만 한다.

현재 한국기원에 소속된 연구생은 100명. 연구생이라고는 하지만 기원에서 따로 배우는 것은 없다. 평소에는 각자 전문도장에서 바둑수업을 쌓다가 주말마다 한국기원에서 서로 기력을 겨뤄 순위를 매기며 스스로 기력을 향상시키는 게 전부다. 하지만 기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지속적으로 상호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큰 공부가 된다.

100명의 연구생들은 기력에 따라 10명씩 10개 조로 편성돼 있다. 1조에서 5조까지가 1군, 6조에서 10조까지는 2군이다. 이들은 조마다 매달 풀리그 형식으로 평가전을 벌여 순위를 조정하는 데 이 평가전을 통해 상위 4인은 윗조로 편성이 되고 하위 4인은 아랫조로 떨어진다. 10조의 하위 4인은 연구생 자격이 박탈되므로 선발전을 통해 새로 충원한다. 따라서 처음 연구생에 입문한 뒤 10조에서 시작해 1조까지 올라가려면 아무리 빨라도 산술적으로 10개월은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워낙 실력이 서로 엇비슷하다보니 상위조로 올라가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프로가 되려면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동료들을 제치고 끊임없이 상위조로 진출해야만 한다. 만 18세가 넘어도 프로에 입단하지 못하면 연구생에서 ‘자동퇴출’되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 있는 ‘연구생 프로입단대회’는 1조 10명에게만 출전자격이 주어지는데 1조에도 못올라본 연구생은 18세가 넘으면 프로입단 시험조차 보지 못한채 눈물을 머금고 ‘하산’해야만 한다.

이러한 완전경쟁시스템 덕분에 연구생의 기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현재 1, 2조에 남아있는 연구생들은 거의 프로와 맞먹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 한국기원 관계자는 “1980년대 중반 이창호가 연구생으로 있던 초창기 시절만 해도 연구생은 아마강자들에게도 선치수 수준이었지만 상호경쟁 속에 실력이 급상승해왔다”며 “현재 연구생 1, 2조는 프로와 호선에도 밀리지 않을만큼 막강하다”고 말한다.

해마다 ‘수졸’(守拙·졸렬하게나마 제 스스로를 지킬 줄 안다는 뜻으로 초단의 별칭)의 반위에 오르는 사람은 모두 8명. 일반인 입단대회 두차례와 연구생 입단대회 한 차례를 통해 각각 2명씩 6명이 선발되고, 여류입단대회를 통해 2명이 뽑힌다. 이 좁은 문을 향해 오늘도 한국기원 연구생들은 ‘제2의 이창호’를 꿈꾸며 바둑에 정진하고 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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