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 정과리문학비평이란 결국 ‘문학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묻는 일일 것이다. 제11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 정과리(42)씨는 그 질문에 대해 명료하게 답했다. “문학이란 삶에 대한 내적(內的) 반성이다.” 정씨는 이 반성적 행위가 사라지고 있는 현상이 곧 문학의 위기이자, 문명의 위기라고 역설했다.
반성조차도 없는 삶, 그것이 세기말을 거쳐 새로운 세기로 접어든 우리의 모습이다. 단지 문화의 한 장르로서의 문학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10년의 연륜을 쌓은 팔봉비평문학상의 역대 수상자들은 대체로 한쪽은 삶의 리얼리티에, 다른 한쪽은 시대와의 상호작용에 더 비중을 두고 문학을 정의해왔다. 처음으로 40대의 수상자가 된 젊은 평론가 정씨는 이 두 시각을 넘어 ‘현실에 대한 내적 반성의 소멸’로 한국문학의 위기적 현상을 정의했다.
이 위기는 결코 일시에 죽지는 않으면서, 지긋지긋하고 지리멸렬하게, 장기지속되는 과정으로서의 죽음의 그림자를 1990년대 한국문학에 던졌다. 제목부터 기묘한 정씨의 수상작 ‘무덤 속의 마젤란’(1999년 11월)은 90년대의 한국시인 11명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죽음의 그림자를 해명한 책이다.
왜 마젤란인가? 그것은 오디세우스적인 의미와 대비된다. 죽음으로부터 삶으로의 귀환이라는 오디세우스적 명제보다, 끊임없는 탐험의 미로 속에서 스스로 소실되어 버린 마젤란의 운명이야말로 90년대 한국문학의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90년대의 시는 문화산업의 양양한 침범 속에서 (겉으로) 활황을 구가한 소설과는 달리, 혹은 소설을 대신해서 문학에게 닥친 죽음의 위기를 몽땅 홀몸으로 체현해야만 했던 것이다… 전자문명의 발달은 근대의 문화제도에 대항해 배냇둥이의 싸움을 전개해 온 문학으로 하여금 문명의 장식이자 마개가 되도록 몰아가고 있다… 문제는 시의 몰락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가 죽음으로써 사는 방식, 즉 저의 본성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본성을 지켜가는 방식이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기형도) ‘생은 죽는 날까지 환란이다’(함성호) ‘죽음을 아는 몸은 순결하다’(채호기) ‘유랑민들이…망치로 우리의 두개골을 두드려 열고 밤새 뇌수를 빨아마시고 있다’(남진우) 는 젊은 시인들의 시구들. 여기에서 정씨는 “어째서 죽음밖에 없는가?”를 질문하고 그것을 ‘무덤 속의 마젤란’으로 해명했다.
이 비평집 자체의 구성도 시의 시대였던 1980년대를 ‘생의 절정’으로 정의한 1부에서 시작, 작고시인인 진이정 기형도의 시에서 나타난 ‘암전(暗轉)’을 거쳐, ‘주검과의 키스’를 행한 시인들의 분석, 그리고 ‘죽음 이후의 네 생’을 다루고 죽음이 ‘범람과 빈혈’하는 90년대 시를 다룬 한 편의 죽음의 드라마처럼 되어있다.
정씨는 “죽음 그 자체로서의 생을 부각시킴으로써 생의 방법론을 암시하기를 바랬다”고 말했다. 지긋지긋한 죽음의 과정을 겪고 있지만 “문학은 근본적으로 삶의 뜻의 문제를 ‘쥐고’있고, 그건 다른 예술 장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결코 사람들은 문학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문학 텍스트를 거의 완전히 장악하고, 그 위에서 자신만의 현란한 문체로 새로운 텍스트를 창조해내는 정씨의 비평은 문단 선배들이 “시보다 더 어려운 평론”이라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평문이 종종 지적 엘리티시즘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정씨는 이 비판에 대해 “1990년대 들어 문학·출판이 문화산업의 침범에 공략당하는 현상을 보면서 ‘나 혼자 잘 났다고 버텨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문지 2세대’에 속하는 그는 ‘문학과 지성’의 인맥이 80년대에는 문학주의자, 90년대에는 엘리티시즘, IMF 이후에는 문학계의 권력집단으로 매도됐지만 문학을 문화의 중심에 세우겠다는 뜻으로 버텨왔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정치한 분석과 유려한 문체로 정씨는 흔히 문단에서 ‘김현 비평의 수제자’로 꼽힌다. 당초 사회계열로 대학에 입학했던 그는 김현의 강의에 매료돼 불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김윤식 교수의 시험시간에 “담배 피워도 됩니까”하고 물었다가 김교수가 대답없이 노려보자, 그냥 담배를 꺼내물고 끝까지 시험을 본 일이 지금도 죄송하다는 정씨. 이런 선배 세대에서 팔봉비평문학상의 수상자도 40대의 정씨에게로 이어졌다.
그는 젊은 각오로 한국현대문학사를 새로 쓰는 것이 자신의 강박관념처럼 되어있다고 말했다. “기왕의 한국문학사는 그 전거를 밖에서 찾았다. 스스로에 대한 지독한 경멸이다. 4·19세대 이후의 문학사를 우리의 시각으로 기술해 한국문학의 뿌리를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것이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포부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약력
1958년 대전 출생·본명 정명교(鄭明敎)
서울대 불문과·대학원 졸업, 문학박사·충남대 불문과 교수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고통의 개념화_조세희론’으로 당선작 없는 입선 등단
1982년 무크지 ‘우리 세대의 문학’ 창간, 계간 ‘문학과 사회’ 편집동인
저서 ‘문학, 존재의 변증법’(1985) ‘존재의 변증법 2’(1986) ‘스밈과 짜임’(1988) ‘문명의 배꼽’(1998)
소천비평문학상(1993) 현대문학상(2000) 수상
■[팔봉비평문학상/심사평] "텍스트 뛰어넘는 섬세한 비평 돋보여"
5권의 후보작 중에서 정과리씨의 ‘무덤 속의 마젤란’이 가장 주목할 비평적 업적이라는 데는 우리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정작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는 많은 논의와 주저가 필요했다.
이 비평집에 수록된 한 편이 마침 현대문학상 수상작으로 지명된 바 있고, 그 심사에 참여한 두 분이 이번의 심사에도 임하게 되어 이 때문에 빚어질 오해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작품 외적 고려 사항보다는 이 저서가 지니는 무게와 가치가 너무 컸기에 결국 우리는 정과리씨를 11번째의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로 합의하게 되었다.
90년대의 우리 시들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것에 문학적, 문화적 의미로 해석하는 정과리씨의 작업은 분명 오늘의 우리 평단에 귀중한 성과이다.
그는 작품의 아래에서 혹은 옆에서 텍스트를 따라가는 다른 비평가들과는 달리, 그것들을 가로지르면서 그 위에서, 어휘, 구절, 시행의 내밀한 구조와 시인의 내면 세계를 섬세하게 해명하며 상상의 지평을 열어감으로써 그 시들이 함의하고 있는 시의 운명을, 그러니까 세기말의 화두인 ‘시의 죽음’의 조짐들을 읽는 데 집중한다.
그 시선은 비관적이지만 그 분석은 풍요하고 그 해석은 진지하다. 그래서 “그 죽음 자체로서의 생을 부각시킬 필요”에 이르는 그의 시론들은 한편으로는 시인과 더불어 진행되는 의식과 사유의 풍성한 전개로, 다른 한편으로는 수사를 실사(實辭)로 충전하는 현란한 문체로 자신의 주제를 강력하게 제시한다.
그 제시의 방식이, 편마다의 글에서는 비평적 플롯으로, 책으로서는 입체적 구성으로 드러나고 있어 ‘문학비평’을 ‘비평문학’으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일구어내고 있다.
우리는 정과리씨의 이 성취에 치하를 보내며, 지난 10년간의 팔봉비평문학상에서 처음으로 40대의 의욕적인 비평가를, 그것도 21세기의 첫 수상자로, 선정할 수 있었던 것에 못지않은 보람을 느낀다.
/심사위원=김윤식 김병익 김주연 도정일
■[팔봉비평문학상/심사경위] 예심통과 5권 모두 40대비평가 평론집
제11회 팔봉비평문학상에서 심사 대상으로 거론된 평론집은 기이하게도 모두가 40대 비평가들의 평론집이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은 10년이라는 연륜을 쌓은 이 상에도 해당되는 것일까? 6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세대, 특히 4·19세대의 평론집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10회 때까지의 심사와는 달리 이번에는 예심을 통과한 5권의 평론집이 모두 70년대 이후 세대들의 것이었다.
김윤식(심사위원장), 김병익, 김주연, 도정일 네 명의 심사위원들은 4월 24일에 열린 1차 본심에서 심사기준을 확인한 후 36권의 평론집을 검토하여 별 어려움 없이 김명인, 남진우, 이경호, 정과리, 하응백 다섯 사람의 평론집을 2차 심사 대상으로 삼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다섯 권의 평론집을 검토한 후 5월 1일 2차 본심에 들어갔다.
2차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은 각각 독자적인 문체와 비평적 특성을 갖고 있는 정과리와 남진우(대상작 ‘숲으로 된 성벽’)를 공동수상자로 결정할 것이냐 , 아니면 정과리 단독 수상으로 결정할 것이냐를 두고 오랫동안 토론했다.
정과리가 최근에 수상한 다른 비평상을 고려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가 심사위원들의 머리를 무겁게 함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장시간의 논의는 그러나 사후에 변명보다는 비난을 감수하는 것이 낫겠다는 심사위원들의 의지로 결론의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한 심사위원이 “그러면 단독으로 합시다”라는 말로 무거운 침묵을 깨면서 11회 수상자는 마침내 정과리로 결정되었다.
팔봉비평문학상은 21세기 첫해에 텍스트를 가로지르고 뛰어넘으며 발랄한 비평세계를 펼쳐보인 정과리를 수상자로 결정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로 말미암아 앞으로의 수상자 선정에 있어서도 훨씬 자유로워질 것이다. /홍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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