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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역사중시와 문화재경시의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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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역사중시와 문화재경시의 이중성

입력
2000.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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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시 관악산 밑에는 콘크리트 벽에다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가미한 국사편찬위원회의 웅장한 건물이 있다. 이것 하나만 봐도 한국정부가 역사교육에 얼마나 힘을 쓰고 있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무엇보다 항상‘역사 건망증’에 시달리며 역사 교육도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일본인으로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역사중시 태도의 허구성을 느낄 때가 가끔 있다. 나는 작년부터 공부 반, 취미 반으로 한국의‘과거길’조사를 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서울로 과거보러갈 때 도보로 이용했던 그 당시의 국도를 따라가는 일이다. 하지만 과거길은 철도나 자동차 도로가 생기면서 대부분 사라져 지금은 옛 지도와 노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아슬아슬하게 복원 작업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대표적 과거길 중 하나인 영남대로를 따라 가면 경기도 이천시 율면 부근에서 석교촌이란 마을과 만난다. 석교는 돌다리라는 뜻이며, 마을앞 냇가에는 대로와 이어지는 돌다리가 있었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이 돌다리는 1995년까지는 남아 있었으나 지방도 시설공사때 철거돼 버렸다. 조선시대의 돌다리라면 서울 한양대앞의 살곶이 다리처럼 문화재 취급을 받아야 할 텐데 왜 함부로 부수는 지 이해가 안갔다.

경상북도 문경에서 점촌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는 삼국시대에 지어진 고모산성이 있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영남대로를 따라 진격한 일본군과 격전이 있던 곳이며, 구한말 소백산맥 일대를 근거지로 한 항일세력들의 아성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산성에는 안내판 하나없고 황폐할 때로 황폐해져 있다. 아랫 마을 아이들은 산성위에서 성곽 돌을 던지며 놀고 있다.

또 산성의 점촌 방면에는 삼국지의 ‘촉나라 잔도’를 방불케 하는 ‘관갑천 잔도’가 남아 있다. 절벽에다 사람이나 말이 다닐 수 있게 벼랑을 깎아서 만든 도로인데 지금도 사람들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잘 보존돼 있다.

그러나 잔도로 올라가는 길은 3번 국도 확장공사때 끊어져 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잡초와 넝쿨로 뒤덮여 있다. 문경새재와 석탄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이 일대를 문경시의‘역사 교육터’로서 정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에서는 관념적 역사 교육을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역사의 현장을 막무가내로 파괴해 버리는 역사 인식의 이중구조는 꼭 시정됐으면 한다.

/ 도도로키 히로시·서울대 지리학과 박사과정·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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